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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지?
대부분의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타인과‘ 연결된 상태’ 에서 보내고 있다. 하지만 소통이 가능한 기기를 갖고 있으면서, 시대의 화두가 소통인지, 그리고 소통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정말로 역설적 상황이다.



1950년 어느 날 저녁.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가 과학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외계인이 주제에 올랐다.

지구가 속한 은하계에 별이 1000억개나 있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1000억개나 있다. 그중 하나인 지구는 아주 빠르고, 연속적으로 생명의 진화가 이뤄져 지적이면서 기하급수적인 번식력을 자랑하는 생명체가 몇 백년 만에 은하를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진짜 경이적인 일은 따로 있었다. 논리적으로 계산해보니, 100만개 정도의 문명이 우주에 존재해야 한다는 가설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 많은 외계인은 왜 인류 앞에 나타나지 않는지 의문을 품었다. 물론 외계인 목격설이 끊이지 않지만, 수학적으로 보면 이웃사람 만나듯 외계인과 조우는 자연스러워야 하는 셈이다. 페르미가 얘기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외계인들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데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이 유명한 ‘페르미의 역설’이다.

진화심리학자인 제프리 밀러는 페르미의 역설을 비튼다. 그는 인류가 외계지성의 진화 가능성을 과대평가한 게 아니냐고 얘기하면서 본인 스스로 ‘우울한 해답’을 내놓는다. “외계인들은 단지 컴퓨터 게임에 중독돼 있다. 그래서 전파 신호를 보내는 것도 잊고 우주를 식민지로 삼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 지하철 풍경을 보면 페르미의 역설과 밀러의 위트가 쉽게 이해된다. 영화 ‘맨 인 블랙’ 처럼 외계인들은 우리 곁에 인간의 얼굴을 하고 이미 와 있다. 우리만 모를 뿐이다. 지하철에서 ‘그들’은 오직 하나에만 열중한다. 스마트폰이다. 밀러의 얘기대로 지구 정복에는 관심조차 없이 게임에 열중하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검색을 하는 데 온통 신경이 팔려 있다.

며칠 전 기억력 부문 세계 기네스 기록 보유자인 에란 카츠가 한국에 왔다. 500자리 숫자를 한 번에 듣고 기억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기억력을 갖고 있는 그도 스마트폰 앞에선 무력(?)했다. 딸의 휴대전화 단축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아내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 기자간담회에서 털어놓았다. 그는 “스마트폰이 똑똑해지면서 뇌가 무뎌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5분에 한 번씩 보는 것을 안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제안도 했다.

전 세계에 칫솔보다 휴대전화가 더 많다는 통계가 있다. 지하철뿐 아니라,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도 손과 마음은 사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에 쏠려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타인과 ‘연결된 상태’에서 보내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소통이 가능한 기기를 갖고 있으면서, 시대의 화두가 소통인지, 그리고 소통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페르미가 과학자들과 밥을 먹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그들’이 만들어 낼 세상이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연결이 끊어진 상태(unwired state)’가 그리운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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