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철공소가 예술촌으로…부산 판자촌이 문화마을로…
서울 몽마르트 ‘문래동예술촌’개항기 담은 ‘인천아트플랫폼’
관광명소가 된 ‘감천문화마을’
성장·속도 넘어 삶의 질 추구
전국 도심재생 프로젝트 활발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피에타’는 서울 청계천의 세운상가를 다시 돌아보게 한 작품이다. 공작기계와 철공소가 가득한 거리가 서울의 한복판이 맞나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건축가 김수근이 1966년 설계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상가인 세운상가는 지난 6월 겨우 철거 위기를 모면했다. 한때 연예인과 고위공직자의 집이 있었고, 1980년대 카세트 플레이어와 스피커 같은 음향기기를 사기 위해 수많은 청춘이 발품 꽤나 팔았던 추억의 장소이자, 지금은 인근 상인들의 생활 터전으로서의 가치를 되살리는 방향으로 재개발 계획이 손질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도심을 문화예술로 재생시키는 사업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흉물스럽다고 허물고 새 것을 다시 짓는 재개발이 아닌, 버려진 것에 문화예술을 입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예술창작과 일상생활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으로 ‘리셋’하는 추세다.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독일 에센 졸페라인12(석탄공장)ㆍ중국 베이징 다싼즈789 예술특구(공장지대)ㆍ프랑스 파리 라빌레트 라 그랑드 알(도축장)ㆍ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폐철도 부지)ㆍ일본 요코하마 뱅크아트1929(은행) 등은 모두 옛 건물이나 단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문화예술의 기능을 더한 장소다.
① 부산 감천문화마을 ② 인천 아트플랫폼 ③ 문래동 갤러리 |
국내에선 대구 구도심지역에 있던 KT&G 창고(연초제조창)를 창작공간과 전시실, 공연장이 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한 ‘대구예술발전소’, 인천시 중구 해안동의 개항기 건축물들을 묶어 꾸민 ‘인천아트플랫폼’이 대표적이다. 이와 더불어 자생적으로 성장한 문화예술거리와 마을도 뜨고 있다. 서울 양천구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 철공인과 예술인의 ‘동거공간’인 문래동창작예술촌은 ‘서울의 몽마르트’로 불리며, 인디음악의 집성지인 홍익대 주변 거리 못지않게 젊은 층에게 인기다. 부산 사하구에 1970년대 태극도인들이 집단 이주해 살던 판자촌은 감천문화마을로 거듭나, 연 관광객 10만명이 넘는 관광 명소로 부상했다. 이런 미술마을은 2009년부터 5년간 지역에 70곳이 생겨났다. 이런 도심 문화예술 재생의 인기는 산업고도화 및 경제발전 시기에 강조되던 ‘속도’와 ‘성장’의 가치가 퇴색하고, ‘질’과 ‘만족’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거주민의 가치관이 바뀐 까닭이다. ‘새 것 피로감’도 작용했다. 역작용으로 지나간 것을 붙잡고자 하는 욕망은 커졌다.
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는 어디까지나 부수적 효과다. 삶의 터전에서 켜켜이 쌓아 온 시간의 두께를 그대로 놔두어 지역민의 만족도를 높이는 게 먼저다. 김여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은 “원래 있던 장소에 활력을 불어넣는 차원에서 문화예술을 넣는다. 그 효과로서 관광지로 관심받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