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공식 관심을 표명했다. 11월 29일이었다. 이 날짜가 의미하는 바를 보면 우리 정부의 우유부단함이 읽힌다.
나흘 전인 25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12개국 TPP 협상 대표들이 모여 상당수 핵심 현안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다. 외신들은 연내 타결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보도했다. 이후 “12개 나라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만났는데 쉽게 타결이 될 수 있겠어요?”라며 연내 타결은 99% 불가능하다던 우리 통상관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획재정부와 관련 부처들의 비상회의가 소집됐다. 그러던 중 28일에는 제3차 한ㆍ중 국방전략대화가 있었다. 이어도 문제와 관련 방공식별구역 문제가 화두였다. 우리 정부는 중국에 방공식별구역을 즉각 조정하라고 요구했지만 중국은 그럴 수 없다고 맞섰다. 우리 정부는 다음날 현오석 부총리가 TPP 가입 관심을 공식 표명했다.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TPP 가입에 주저해 왔지만 믿었던 중국에게 방공식별구역 조정조차 양해를 구하지 못하자 입장을 돌변한 모양새다.
외교통상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 본다. 한국이 미ㆍ중 양국 사이의 위험한 줄타기에서 일본이라는 변수를 과소평가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라고 꼬집어 말한다. 어차피 우리 정부관료들은 TPP 참여의 필요성에 대해 이곳저곳에서 힘줘 말하고 다녔다. 공식 표명 전에도 한국이 TPP 가입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지난 10월에 기자와 만난 국내 한 대기업 중국지사장도 “중국은 한국이 언제 미국의 품에 안길지(TPP 가입) 시기만 관심있게 지켜보는 중이라 하더라”고 말했을 정도다. 반면 올 초 TPP 가입을 서둘러 발표한 일본은 한국에 뒤처졌던 국제 통상 지도를 한방에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카드를 손아귀에 넣게 됐고 더불어 한국의 TPP 가입 열쇠까지 쥐게 됐다. TPP 가입의 절차는 일단 공식 가입 의사 표명 이후 12개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가 일본에 비해 확실하게 비교우위에 있는 카드는 현재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협상 중인 한ㆍ중 FTA밖에 없게 됐다.
윤정식 (경제부) yj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