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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乙에게 청첩장 안기기 쐐기 박은 대법원
공무원이 업무상 연관이 있는 업체 관계자에게 축의금을 받았다면 아무리 액수가 적어도 ‘뇌물 수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개인적 친분 등 특별한 관계’가 없으면서 돈으로 축하를 받은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 같은 사법부의 결정은 축의금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것으로 일반의 상식이나 법 감정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공직사회뿐 아니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각종 경조사 때 한몫 챙기려 드는 비뚤어진 사회 풍조가 아직도 만연하다. 이번 판결은 이를 바로 잡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지방노동청 과장이던 김모 씨는 지난 2010년 자녀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이 관할하는 업체 관계자 45명에게 문자와 청첩장을 돌렸다. 이를 받아든 업체 사람들은 마지못해 5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까지 530만원의 축의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물론 5만~10만원 정도는 ‘사교적 의례(儀禮)’로 관행상 용인되는 금액일 수도 있다. 2심에서도 이런 정도는 무죄라고 했지만 대법원은 단호했다. 아무런 친분도 없으면서 업체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는 의도 자체가 불순하고 건전치 못하다는 것이다. 액수가 적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라는 등의 이유로 자꾸 눈을 감다보면 잘못된 관행은 결코 고쳐지지 않는다.

당시 김 씨는 사업장 산업재해안전을 지도 점검하고 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는 근로감독감들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런 김 씨가 보낸 청첩장을 받고 모른 척 할 배짱 큰 업체는 없다. 정부 기관의 관리 감독을 받는 업체들 입장에선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갑(甲)이다. 조금만 밉보이면 과태료와 인허가 문제 등 사사건건 불이익을 받게 된다. 심한 경우 형사처벌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업체 입장에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눈치껏 성의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생사여탈권을 쥔 공무원이 내미는 청첩장을 누가 외면할 수 있겠는가. 공무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직무 수행과 관련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 공직사회의 청렴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럴 각오가 없다면 공직을 떠나야 한다.

일부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소 하청업체는 가장 중요한 일과가 납품 대기업 임직원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한 건이라도 빠뜨렸다가는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몇몇 대기업은 하도급업체로부터 일절 축의금 등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더 확산돼야 한다. 그게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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