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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박지영> 경매 역사에 없는 참 특이한 경매
미술시장의 법칙 중에 ‘3D’라는 게 있다. 고급 미술품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죽음(Death), 빚(Debt), 이혼(Divorce)이 그 세 가지다. 미술 경매회사 직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최고의 미술품을 다량 확보해 다음 경매에 내놓는 일이다. 그런데 미술품 한 점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들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순간이 있다. 바로 3D 법칙이 작용할 때다.

첫째, 저명한 미술품 컬렉터나 미술 수집을 즐기던 유명인사가 죽었을 때 그 컬렉션이 세상에 나온다.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이 사망한 다음 해인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브 생 로랑 미술품 컬렉션 경매’가 열렸다. 피카소, 마티스, 로마시대 조각상 등 733점의 희귀한 작품들이 나와 3억7000만유로(약 5356억원)에 낙찰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컬렉션은 이브 생 로랑과 그의 동반자인 피에르베르게가 50여년간 착실하게 모은 수작들이다. 베르게는 이 경매로 벌어들인 수익을 자선단체 등에 기증했다.

둘째, 사업이 위기에 처했거나 급전이 필요할 때 컬렉터는 자신의 그림 컬렉션을 제일 먼저 내다판다. 2008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사가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불황기로 접어들었다. UBS, 도이치방크 등 세계적인 은행들이 그러하듯 리먼브러더스도 오랫동안 미술품 수집에 공을 들였다. 파산 이후 돈이 급한 리먼브러더스는 이듬 해부터 자신의 컬렉션을 야금야금 시장에 내놓아 수백억 이상을 가져갔다. 빚을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급한 불을 끄는 데 효자 노릇을 했다.

마지막으로, 질 좋은 작품이 시장에 쏟아지는 것은 컬렉터가 이혼할 때다. 부부가 함께 수집한 미술품을 딱 반으로 나눌 수 없으니 경매에 부쳐 낙찰금액을 반씩 챙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경매회사 직원들은 매일 뉴스 부음란을 챙기며 중요 인사의 사망 사고를 챙기고, 주변 지인들을 통해 컬렉터의 가정사를 세세하게 관찰한다.

지난 11일 K옥션의 ‘전재국 컬렉션 경매’에 이어 18일 서울옥션에서‘전 대통령 컬렉션 경매’가 열린다. 11일 경매에서 80점이 모두 낙찰되는 진기록이 벌어졌다. 그날의 ‘완판쇼’를 보자니 다가오는 경매도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인 명사들은 자신들의 컬렉션을 경매에 내놓아 좋은 일에 썼다. 천재시인인 T.S. 엘리엇이 사망한 후 그의 미술품 컬렉션을 관리하던 부인은 2012년 사망 당시 유언을 남겼다. 남편의 컬렉션을 경매에 내놓아 그 수익금으로 젊은 시인들과 예술가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미술시장의 3D 법칙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압류품이 미술 경매에 나와 인기리에 낙찰되는 건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작품들이 좋은 가격에 낙찰돼 많은 금액이 국고로 들어간 뒤 좋은 취지로 쓰이길 바란다. 민주화 운동가의 후손을 위한 장학금이든, 젊은 예술가를 위한 지원금이든, 어려운 이를 어루만지는 ‘특별 기금’으로 환생하길 바란다.

박지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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