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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이모’ 가 세밑에 전하는 러브레터
이해인 수녀 40년 詩作 시전집으로
이해인〈사진〉 수녀의 가방은 큼지막하고 무겁다. 그 속에는 만나는 이들에게 줄 선물이 잔뜩 들어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주신 꽃골무를 디자인화한 명함과 꽃그림 조가비, 책 등이다. 책마다 사인과 그림, 스티커로 장식까지 해주는 수녀의 가방은 희망과 사랑의 보따리다. 소녀 같은 맑은 목소리와 웃음을 지닌 이해인 수녀가 내년이면 칠순이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영토’를 출간, 시인의 이름을 얻은 지 40년. 1000편의 사랑의 시로 아픈 이들을 위로해준 시인의 10개 시집이 ‘이해인 시전집’(2권ㆍ문학사상)으로 묶여 나왔다.

이해인 수녀는 17일 시전집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민들레영토 수녀님, 하얀 구름 수녀님으로 불렸는데 최근에는 ‘국민 이모 수녀님’이란 호칭을 얻었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국민 이모’라는 호칭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는 시전집을 낸다고 했을 때 당혹스러웠다고 털어놨다. “훌륭한 시인이라거나 문학적 평가를 받는 시인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데도 저만큼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시인이 있을까요.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면 더 희생적이고 봉사의 삶을 살아야겠다, 작은 위로, 기쁜 천사 노릇을 해야겠구나 생각을 해요.”

80년대에는 베스트셀러에 여러 권이 올라 수도자가 이래도 되나 싶어 ‘내 것 좀 팔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다고.

이해인 수녀는 자신의 시를 난해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내가 쓴 시’ 같은 쉬운 시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가짜 이해인 시’도 세간에 떠돌아다니지만 개의치 않는다. 시를 좋아하는 그리움의 표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주머니에 메모장을 넣고 다니며 매일 빠지지 않고 한 페이지씩 지나가는 생각들을 적는다는 수녀의 메모장에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시가 30편 정도 있다. “아플 때 특히 많이 쓰게 되는데, 안 쓰려고 해도 쓰게 돼요. 아, 이게 기도이고 노래이구나, 편지이고 러브레터구나 생각이 들죠.” 그는 자신의 시가 한 톨의 소금 같기를 소망한다.

2008년 대장암이 발병해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는 건강 상태에 대해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는 아니다”고 했다. “항암주사만 30번, 방사선치료만 28번 했는데 그런 것 한 사람 같지 않다는 얘길 들어요. 암에 걸리면 명랑하게 투병하겠다 했기 때문에 본보기가 되려고 하죠. 원망하기보다 암에게 ‘조금만 참아줄래’ 기도하니까 참아지는 것 같아요.”

그는 얼마 전 선배 수녀님이 세상을 뜨는 것을 보고 유언장을 썼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인세 수령 이름을 재단으로 하고 장례식은 수도원식으로 간소하게 하자, 하나하나 작성하고 나니까 마음이 가벼워요. 이제 하늘나라로 이사만 가면 돼요.”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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