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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추위보다 힘든건 무관심…크고작은 온정에 아직은 살만한 세상…”
본지 서상범 기자 구세군 자선냄비 체험기
퇴근시간후 온정의 손길 하나둘씩 늘어
동전내는 사람부터 달러넣는 외국인까지…
직장인은 카드단말기로 신용카드 기부 증가

코트에 외투 껴입어도 녹록치 않은 추위
노점상 상인들과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기자님, 옷을 따뜻하게 입으셔야 할텐데요. 생각보다 많이 추울겁니다.”

지난 6일 구세군 자선모금 체험을 위해 만난 최상곤 구세군 사관은 기자의 옷차림부터 지적했다. 두꺼운 겨울코트를 입고 간 기자에게 최 사관은 “그걸로는 몇 시간씩 바깥에서 서 있을 수 없다”며 두꺼운 빨간색 자원봉사자용 겉옷을 건넸다. 결국 코트 위에 겉옷까지 입고 단단히 준비를 마치고서야 서울 명동 예술극장 앞 자선냄비에서 본격적인 모금체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리 도착해 있던 구세군 사관학생 2명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교육도 받았다.

자세는 흐트러짐 없이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유지한 채로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멘트를 할 것, 핸드벨(종)은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어 소리에 여운이 남게 할 것 등의 숙지사항을 전달받고 곧바로 모금을 시작했다.

기자는 종을 흔들며 체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종을 흔들기는 여간 쉽지 않았다. 단순히 팔 힘으로만 종을 치다보니 10분이 지나기도 전에 팔이 저리기까지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손목을 이용해 종을 울리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 

본지 서상범 기자(왼쪽)가 주말을 앞둔 명동 한복판에서 기부의 상징인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체험을 하고 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하지만 그 후에는 추위가 밀려왔다. 영상 1도의 날씨였지만 수십분씩 가만히 선 채로 겨울날씨를 버티기란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추위보다 힘든 것은 지나가는 행인의 무관심한 시선이었다.

‘땡땡~’ 종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이들은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돌리고 무던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금 시작 30분이 지나서야 첫 모금자가 나타났다.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지갑에서 천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모금함에 넣었다. 기다리던 첫 모금자를 만났다는 기쁨에 부리나케 쫓아가 여성에게 이름과 모금이유 등 질문을 던졌지만 여성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취재를 거부했다.

비록 취재를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종을 흔드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행인을 향해 미소를 짓는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두 번째 모금자가 나타났다.

5000원짜리 지폐를 냄비에 넣은 김정은(35ㆍ여) 씨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웃을 조금이나마 도와주려고 노력한다”며 기부이유를 밝혔다.

주말을 앞둔 명동거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갈수록 자선냄비를 향한 온정의 손길도 조금씩 더해져갔다. 유모차를 타고 고사리손으로 자선냄비에 돈을 넣는 아이에서부터 70대의 노신사까지 금액은 각각 달랐지만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은 한결같았다.

외국인 기부자도 만날 수 있었다. 미국인 관광객 테오(41) 씨는 1000원짜리 두 장을 넣으면서 “미국에서도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가 기부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사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시초는 바로 미국이다. 1891년 성탄절이 다가오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좌초한 배의 선원 수백명이 추위에 떨자 이를 본 구세군의 조지프 맥피 사관이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맥피 사관은 냄비 앞에 ‘이 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모금활동을 벌여 선원에게 따뜻한 수프를 끓여 먹였다. 이것이 구세군 자선냄비의 효시가 됐고, 구세군은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자선냄비를 내걸고 성금을 모으고 있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한국구세군에 의해 서울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올해까지 85년째 이어오고 있다.

오후 4시가 되자 함께 모금을 하던 김홍수 사관생도가 “냄비를 옮겨야 한다”고 말을 건넸다.

어리둥절하며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김 사관생도는 “이제 노점상분들이 영업할 시간이라 자리를 조금 옮겨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점상이 영업하기 전인 오후 4시 이전에는 명동예술극장 사거리의 중심에서 모금을 할 수 있지만 노점 영업이 시작되면 근처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다시 자선냄비를 설치했다. 동시에 스피커의 방향도 조정해야 했다.

김 사관생도는 “노점상분들이 스피커로 전해지는 모금 목소리가 커서 영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항의를 종종한다”며 “가뜩이나 요즘 경기가 안좋아 장사가 잘 안되는 노점상인들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5시가 되자 이날의 최고액 기부자를 만날 수 있었다. 5만원권 한 장을 자선냄비에 넣은 김오순(70) 할머니는 거액(?)의 돈을 넣은 이유를 묻자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며 손사래를 쳤다. 계속된 질문에 김 할머니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조금 여유가 있을 때 베푸는 삶이 나중에 나를 비롯한 주위사람들에게도 돌아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오후 6시가 넘자 해는 어느덧 지고 기온도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퇴근시간을 맞은 행인의 기부행렬에 추위를 느낄 틈이 없었다. 신용카드로 5000원을 기부한 직장인 박모(32) 씨는 “빨간 냄비를 볼 때마다 남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반사적으로 들어 작은 돈이나마 기부하고 있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김 사관생도는 “작년부터 자선냄비에 부착된 카드 단말기를 이용해 신용카드 기부도 가능해졌다”며 “주로 직장인이 카드를 이용해 기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험을 마칠 무렵인 오후 7시께, 초라한 행색의 한 50대 아주머니가 자선냄비에 동전 수십개를 넣었다. 급히 쫓아가 이름과 모금이유 등 몇 가지를 물었지만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말할 게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끈질긴 질문에 잠시 멈춰선 아주머니는 “나는 별로 가진 게 없는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 며칠 동안 모은 동전 몇 개를 나눈 것”이라며 발길을 재촉했다.

이날 명동예술회관 앞에서 모인 금액은 총 101만1250원.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모금은 전국 각지에서 연말까지 진행된다.

최 사관은 “남을 돕는 손길에 크고 작음이란 없지만, 자신의 형편도 어려운 분들이 보내주는 따뜻한 정성을 볼 때마다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상범 기자/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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