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해외에 진출한 국내 대형건설사들이 줄줄이 수천억원대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면서 최근 이들의 실패 사례를 분석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흔히 ‘저가수주’로 압축되는 실패 원인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해 향후 진출할 건설사들에 경종을 울리자는 것이다.
시공 과정에서 예상보다 훨씬 큰 비용이 투입되면서 결국 저가수주의 오명을 안았지만 실제 원인은 훨씬 복합적이고 다양하다는 게 건설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해외사업 현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기자재 가격 상승, 협력업체 부도, 인건비 상승 등 악순환을 맞으면서 불가피하게 손실 규모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악조건 속에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공기 지연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공기 지연은 피할 수 있었지만 손실은 불가피하게 늘었다는 것이다.
공정률을 높이기 위해 현장 인력을 일시적으로 대폭 늘리는 소위 ‘돌관작업’을 감행하면서 인건비가 불어났고, 사업의 진행을 위해 협력업체의 부도 피해를 대형건설사들이 대거 떠안으면서 피해 규모가 커졌다는 해명이다.
발주처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극도의 공기 단축을 요구하는 해외사업장의 여건 변화도 손실을 부풀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발주처가 전통적인 순차별 진행방식으로는 5~6년 걸릴 사업을 2~3년 안에 끝내주길 요구하면서 이른바 패스트트랙(Fast Track) 방식이 일반화됐다는 것이다.
패스트트랙이란 실시설계와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보통 건설 기간을 극도로 줄이기 위해 도입된다. 설계를 진행하면서 이미 터파기 등의 시공 작업을 시작하는 식이다.
해외사업장의 대표적 사업인 플랜트 시공 등은 수익성 및 효용이 완성시점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공기를 단축할수록 발주처의 이익실현은 극대화된다.
그러나 패스트트랙을 도입했다가 설계와 시공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지 않으면 오히려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공사 중에 설계가 변경되면 공기가 늘어나 비용이 증가하고, 설계자와 시공자의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관계자는 “향후 패스트트랙 방식의 위험성을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대형건설사들은 이 부분을 위기이자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해외 발주처가 요구하는 패스트트랙 방식의 시공 능력을 갖춘 회사가 세계적으로 수십여개에 불과해 이번에 겪은 실패 경험이 장차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최근 수년 간의 해외사업 실패 경험은 앞으로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며 “패스트트랙 방식은 건설사가 설계(E), 구매(P), 시공(C) 능력을 모두 갖춰야 하는데 그런 회사는 세계적으로 20여개에 불과하고 그 중 4개(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대림산업, SK건설)가 국내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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