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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생생e수첩> 일그러진 또 하나의 자화상
오늘(19일)자 조간을 장식한 사진 한 장이 새롭게 한 주를 시작하려는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문제의 사진은 전날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정부 주최 기념식 행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쪽’, ‘한자리 두 모습’ 등의 제목이 가능합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사회의 진영논리, 갈등구조, 그리고 이념적 편향성을 고스란히 말해줍니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린 상황을 감안하면 부끄럽게 짝이 없습니다.

짧은 언급으로도 웬만큼 눈치 챘을 겁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행사 중 합창단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자 정홍원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등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고, 박준영 전남도지사와 오형국 광주시작 대무대행 등 일부 참석자들은 일어서서 불끈 쥐 주먹을 흔들며 그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사진=해마다 되풀이 되는 ‘같은 행사, 다른 모습’ㆍㆍㆍ18일 광주 국립5.18민주화묘지에서 열린 정부 주최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나오자 박준영 전남도지사 등 야권 인사들은 일어서서 주먹을 흔들며 제창하고, 정홍원 국무총리, 박승춘 국가보훈처장등 정부나 여권 인사들은 앉아서 듣고 있다.]

기자는 노래를 부르고 안 부르고를 분별하려 하거나 또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려는 맘 추호도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정부 주관 행사로, 서서 노래를 부른 이들은 야권 인사들이고, 귀와 눈을 열고 합창을 지켜 본 이들은 그 반대라는 점입니다.

이 보다 더 선명한 움직임은 행사장 외곽에 있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를 비롯한 이 당의 지도부의 행보입니다. 행사가 열린 그 시각 그들은 현장에서 멀지 않은 시내에 머물렀지만 결국 행사에는 불참했습니다. 유가족이나 시민단체 대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밝혔듯이 정부 주관 행사라는 점 때문입니다.

굳이 여기서 안 대표가 자신이 주도한 윤장현 후보 광주시장 전략공천과 관련, 날계란 세례와 갖은 험담을 들었거나 김 대표가 같은 문제로 거센 항의를 받았거나 하는 문제 역시 그다지 중요치 않습니다. 문제는 이념적 성향을 이 판국에 정치 공학적으로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냈어야 했느냐 입니다. ‘새정치’를 주창하는 안 대표가 이젠 아예 합리적 중도세력을 포기한 걸까요.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방선거가 임박할수록 우리 민심은 합리적 판단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리하면, 기자는 비난의 화살을 정부쪽으로 겨누고자 합니다. 우선 무엇보다 정부의 포용력을 탓하려는 겁니다. 이 사진 한 장으로도 우리 정부, 더 구체적으로는 보수진영이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옹졸한지 짐작이 갑니다.

굳이 밝히라면 비교적 비판적 보수성향인 기자는, 문제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낯선 이념결합적인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광주사태 당시 희생된 두 젊은이의 영혼결혼식이 배경이 된 노래로 이 땅의 민주화 운동에 대표적인 민중가요였다는 점은 많은 이들이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엄연히 우리 사회에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인식되는 노래인 겁니다.

특히 이 곡은 5.18 기념식이 2003년 정부 행사로 승격된 이후 2008년까지 행사에 포함돼 참석자 전체가 공식 제창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다 2009년부터 본 행사에 빠지더니 지난해까지 식전행사 때 합창단 공연으로 대체됐습니다. 그러자 여야가 논의 끝에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이 지난해 6월 국회를 통과했으나 무슨 영문인지 국가보훈처가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두고 합창단 노래는 되고 참석자 모두가 같이 부르는 제창은 안 되는 이분법적 접근이 한심스러울 따름입니다. 합창이면 어떻고 제창이면 어떻습니까. 민주화에 관한한 대놓고 자신 있게 못 나설 이유가 있기라도 한 건 가요. 기자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이 땅의 민주화의 과정과 현실, 그리고 미래를 탓하지 못합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랐지만, 이날 합창단원 일부가 일당 5만 원에 동원된 ‘알바’였다는 논란이 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입니다. 맞는다면 이 또한 우리 정부, 특히 행사주체인 국가보훈처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국가를 위한 보훈의 진정한 의미에는 이 땅의 민주화를 외치다 희생된 이들도 포함된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이런 사실부터 국가보훈처가 되새기고 깨우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 이상 이런 문제로 국가적 에너지가 낭비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가요.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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