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해주겠다던 후보자들의 사탕발림에 속아온 20년…정치바람에 휩쓸렸던 지방선거, 내 가족 · 내 고장 위한 ‘실용적 선택’을
“큰 비만 내리면 서로 오도가도 못하는 아랫말 윗말 사이에 다리를 놓겠다.”“수십년 정체돼 발전이 없는 이 곳에 쾌적한 환경의 뉴타운을 건설하겠다.”
국회의원 300명을 뽑는 총선에서 246개 지역구에서는 지역개발 공약이 난무한다. “이 지역에 도시가스가 들어오도록 하겠다”, “우리 시에 사행산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들으면 유권자들은 솔깃해지고 이 국회의원 후보자의 능력에 대해 호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공약은 거짓말에 가깝다. 아무리 실현가능성이 99%에 근접한다고 해도, 이는 국회의원 입후보자가 할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한 밖이다.
이같은 지역 공약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지방자치단체장과 광역ㆍ기초의회 의원 뿐이다. 지자체 단위에서는 단체장의 힘이 더 셀 것 같지만 이같은 지역설계의 최종 판단을 지방의원들이 하기 때문에, 의제를 설정하는 단체장과 이 의제의 가부를 판단하는 지방의원의 권능은 엇비슷하다.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심지어 “학교주변 도로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겠다”, “대형 유통업체가 농어촌 소도시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겠다”, “셋째아이 양육수당을 인상하겠다” 등 마치 중앙정부나 국회에서 정할 것 같은 굵직한 일도 처리한다. 지역 복지이자 지역 경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그간 이처럼 많이 속았고, 오해했다. 지역 발전을 논할 때 마치 지역구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 보다 더 강한 법률적 권능을 발휘하고, 기초단체장이 기초의회 의원보다 더 센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우리 지역의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한한, 지방 의원과 단체장의 권한은 이처럼 막강하다. 경기북부 한 단체장과 의회는 도시를 발전시켰지만, 경기남부 한 단체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총선이 모든 면에서 더 중요할 것 같지만, 윤택해지는 삶, 생활민주주의 실현을 바란다면 지방선거는 총선이 갖는 의미를 능가한다.
우리는 또다른 손해도 보고 있다. 특정 정당에 대한 호불호 때문에 지방자치의 참뜻을 망각한 것이다. 살기 좋은 우리 고장을 만들자는 한표가 특정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실망한 정파에 대한 분풀이 수단으로 홧김에 던져진다.
1995년 1회 지방선거 부터 지역 이슈는 사라지고 보수 3당야합 심판이라는 ‘홍두깨’가 선거판에 난무했다. 220여석의 거대정당 민자당은 광역단체장 15석중 5석만을 건지는 참패를 당한다.
건국이후 첫 진보세력 집권이던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 석달여만에 치러진 2회 선거에서는 그나마 심판할 것이 없었던지 여러 정파가 골고루 나눴지만, DJ정부 레임덕이 가시화되던 2002년 3회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세력이 압승하고, 노무현 집권 후반기에 치러진 4회 지방선거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보수파 이명박이 집권한지 3년만에 열린 2010년의 5회 지방선거 역시 정권심판 양상을 띠면서 집권세력이 패퇴한다.
첫 지방선거 한 해 전인 1994년 지방자치법이 건국 이후 최초로 시행된지 올해로 20년이다. 이젠 최소한, 지역 일꾼들이 내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겠다. 아울러 이들이 한해 600조원을 주무르는 점을 감안하면 1400만원이나 되는 소중한 한 표를 화풀이용으로 허비하지 말아야겠다. 우리가 방치하는 사이 지난해 지방의원 조례 발의실적은 광역의원 1명당 1.06건, 기초의원 0.92건에 불과했다.(바른사회시민회의 자료)
성년이 됐으니, 난맥상은 유권자, 내 탓이다. 분풀이는 대선때 하고, 중앙무대 선량(選良)들의 정치 실패는 총선때 심판하자. 지방선거는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이 편안해지고 내 집앞이 안전해지는 길을 찾는 ‘실용적 선택’이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