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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정용덕> 이기적인 사회와 국가개조
정용덕 서울대 교수

더러 외국을 방문할 때면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세계에 배태되어 있는 고유의 문화적 특성과 조우(遭遇)하게 된다. 미국 대학의 남학생 기숙사에서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극단에 가까운 개인주의가 한 예가 될 것이다. 샤워장에서 자기 방까지 거의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는 등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는 듯이 자유분방하다가도, 혹시 남에게 불편을 끼쳐 그 사람의 불평에 접하는 순간 곧 바로 자신의 행동을 ‘절제 모드’로 바꾸는 그들이다.

정반대로 독일에서는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공동체주의를 실현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예로써, 이 나라에서 부득이한 일로 잠시 주차위반이라도 하는 경우에는 아예 벌금 낼 것을 예상해야 한다. 주민들의 즉각적인 신고로 불법주차 ‘딱지’가 붙여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실수로 휴지조각이라도 하나 흘리는 날에는 열에 아홉은 지나가는 시민에 의해 지적당한다고 보면 된다. 베를린 지하철 승객들의 엄숙하다고 할 정도의 조용함과 질서정연함은 파리 지하철 승객들의 낭만적이고 활달한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의 눈에 우리의 생활세계가 어떻게 비춰질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혼자서도 얼굴 붉어지기가 십상이다. 지하철에서 승객들의 불편은 아랑곳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잡상인과 광신도들, ‘우측통행’ 화살표가 계단마다 촘촘히 붙어 있건만 굳이 상대방의 어깨를 부딪쳐가며 오르내리는 승객들의 무질서를 개인주의 문화에서 비롯되는 자유분방함으로 합리화할 수는 없다. 여학생들을 성희롱하거나 ‘몰카’하는 불량배를 뻔히 쳐다보면서도 수수방관하는 승객들, 거리에서 질서 지키지 않는 젊은이들을 나무라다가는 오히려 봉변당한다고 외면하는 어른들에게서 공동체주의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다름 아니다.

지난 주 8일 감사원의 중간 감사결과 발표에서 ‘세월호 참사’가 인재(人災)였음이 재확인되었다. 이 비극적 사건은 개인주의나 공동체주의의 문화로는 도저히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개인주의가 철저했다면, 모든 관련자들이 각자 맡은 직무를 (개인주의식 표현을 빌리면) ‘계약’이 이루어진 그대로 책임 있게 실행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오해되고 있는 것처럼) 공동체주의가 활성화되어 있다면, 전체 구성원들의 안전과 이익을 우선하면서 자기 자신은 희생하는 자세를 취했어야 한다. 직책에 부여된 개개인의 소임을 내팽개치고, 전체 승객보다는 자신의 개인적 안위만 먼저 챙긴 선장과 승무원들의 행태는 개인주의나 공동체주의와는 거리가 먼 단순 무원칙적인 이기주의의 종합세트였다. 여객선 안전 관리에 소홀했던 감독기관들, 관할구역 여부를 따지다가 ‘골든타임’을 허비한 구조기관들도 매한가지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다는 정답은 없다. 각 사회의 구성원들이 합의하여 선택할 가치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던 각각 준수해야할 나름대로의 규범과 제도가 마련되고, 그에 따라 그 사회의 질서유지와 발전이 모두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개인주의도 공동체주의도 아닌, 그저 개인과 집단의 원색적 이기주의만 만연해 있는 한국에서 국가를 개조하기란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위기상황에서도 안내방송에 따라 자리를 지킨 학생들에 대해 ‘빨리 뛰쳐나오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당할 정도로 젊은이들이 패기 부족’ 운운한 일부 기성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헛소문이기를 바라면서도, 마음 한 쪽이 켕기지 않을 수 없다. 자기만 출세하고 부자 되겠다고 동료들을 양 팔꿈치로 쳐내며 달려 온 우리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안내방송을 믿고 끝까지 질서를 지키다가 희생한 어린 학생들의 순수함에 미래 한국의 희망을 걸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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