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최수현 금감원장이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등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최 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해 제심위 심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당초 결정대로 중징계를 하는 내용의 ‘국민은행 본점에 대한 부분검사(주 전산기 관련)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임 회장과 이 행장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 행장은 이미 이사회에 모든 걸 맡기겠다고 공언한 터다. 경영공백이 불가피해졌고, KB 직원들은 말그대로 패닉에 빠졌다. 

▶최 원장, 중징계 발표 이유는=최 원장이 KB금융의 두 수장에 대해 중징계 방침을 고수한 것은 국민은행의 주 전산기 교체 과정을 통해 KB금융의 내부통제에 총체적인 부실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0억원대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주 및 은행 내부적으로 온갖 위법ㆍ부당행위가 발생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두 수장의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조만간 임 회장에 대해서는 당초 계획대로 ‘문책경고’로 징계수위를 높인 후 금융위원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금융위 역시 최근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KB금융의 내홍이 금융질서를 교란시킬 정도로 심각하다고 판단하는 만큼 임 회장의 징계 관련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이 행장의 경우 현행 감독규정상 원장 전결로 중징계를 확정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위의 결정과 상관없이 곧바로 중징계가 확정된다.

최 원장의 이같은 결정은 법적으로 하자는 없다. 제심위의 법적 지위가 금감원장의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원장은 제심위의 심의 결과를 거부해도 법적 하자는 없는 것이다. 다만 제심위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영록-이건호’ 거취는=최 원장이 KB금융의 두 수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기로 전격 결정한 만큼 이들의 거취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이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아도 당장 자리에서 물러날 필요는 없다. 현행 감독 규정상 3년간 금융권에 재취업을 할 수 없어 연임이 불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당국의 중징계가 ‘사퇴 권고’로 여겨지는 만큼 재임 기간동안 당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자진 사퇴’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 행장의 경우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사회에 자신의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 행장의 중징계 확정이 이사회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김중웅 국민은행 이사회의장은 “감독기관으로부터 (이 행장이) 중징계를 받으면 (이 행장이 사퇴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감독기관이 결정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이 행장이 중징계를 받으면 재신임을 거부할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이 행장에 대한 당국의 징계 결과가 나온만큼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이 행장의 재신임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장이 제심위의 결정을 번복한 것은 그만큼 당국이 최근 발생한 KB금융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KB금융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KB 경영공백 불가피=이번 금융당국의 결정으로 국민은행은 물론, KB금융그룹 전체 분위기가 참담해졌다. 그룹의 핵심 경영자인 두 수장이 사실상 당국으로부터 ‘사퇴 권고’를 받아 당분간 경영 공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은행의 경우 이 행장이 취임 직후 지속적으로 추진한 ‘스토리 금융’ 영업이 이제야 전사적으로 확대돼 스타트라인에 선만큼 이 행장의 공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새로운 행장이 온다고 한들 이 행장의 ‘스토리 금융’을 이어받을지도 의문이다. 보통 행장이 바뀌면 전임 행장의 그림자를 지우려고 새로운 경영전략을 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새 신발을 신고 적응기간을 거쳐 이제 뛸 준비를 해야 하는 육상선수가 다시 다른 신발로 갈아신어야 하는 형국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제재 방침이 확정되자 직원들이 모두 공황상태에 빠진 느낌”이라며 “이제 내분을 정리하고 조직이 정상화될 줄 알았는데 또다시 블랙홀에 빠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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