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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제3부 전원일기<39>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치는 12월...그러나 시련 속에 진정한 쉼이 있다
12월은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시기다. 캐럴송이 울려 퍼지는 도시의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농한기인 전원의 12월은 깊은 동면 속으로 빠져든다. 이 시기는 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치고 일 년 중 일조량이 가장 적은 시련의 달이다. 하지만 이런 시련을 이겨내고 더 나아가 즐기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쉼과 느림을 맛볼 수 있다.

*동장군이 심술을 부리는 ‘시련의 12월’

12월에는 강추위가 찾아오고 눈도 많이 내린다. 절기로 보면 12월 7일이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 하지만 이는 중국 화북지방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절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이 시기 적설량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예부터 대설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고 전해진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의미이다.

12월의 전원풍경(홍천군 내촌면 동창마을)

대설은 뒤이어 찾아오는 절기인 동지(冬至·12월 22일)와 함께 한겨울임을 알려준다. 그래서 농부에게 있어서 12월은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이다. 또한 가을 동안 수확한 곡식들이 곳간에 가득 쌓여 있으니 마음이 넉넉해지는 시기다.

동지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져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다시 서서히 길어지므로 동짓날은 종교·풍속적으로 축제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해서 축하하고 즐겼다. 궁중에서는 회례연을 베풀었으며, 민가에서는 팥죽을 쑤어먹는데 죽 속에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었다. 팥죽 국물은 역귀를 쫓는다 하여 벽이나 문짝에 뿌리기도 했다.

가지에 쌓인 눈이 녹아 흐르던 눈물이 다시 얼어붙어 만들어 낸 얼음나무

지난 2010년 가을, 강원도 홍천의 산골마을로 들어온 필자 가족도 혹한과 폭설의 겨울나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2012년 12월에는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25도(기상청 동네예보)를 기록하기도 했다.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면 추위도 추위지만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에 난방비 걱정이 되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장래 전원생활을 준비 중인 이들은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동네별로 한겨울 기온 차이가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개별 터를 찾아다녀야 한다. 실례로 우리나라 시·군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홍천군의 경우 1읍·9면으로 이뤄져 있는데, 면별 기온이 사뭇 다르다. 홍천군의 날씨는 홍천읍을 기준으로 발표되는데, 홍천읍의 경우 필자가 살고 있는 내촌면보다 겨울에는 3~4도 가량 더 따뜻하다.

또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점은 어떤 특정 지역(면 단위)이나 마을(리 단위)의 아침 최저 기온이 가장 낮다고 해서 낮 기온도 가장 낮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상청의 동네예보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유난히 일교차가 큰 지역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한겨울 지역별 기온은 한랭전선의 움직임과 지리·지형적 특성에 따라 다를 것이고, 개별 터의 향과 고도차이 또한 기온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전원에 살다보면 농사나 일상생활에 있어서 도시보다 더 절기와 날씨 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12월 한겨울에는 특히 눈길과 빙판길 차량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오르막에선 적당한 속도(필자는 30~40km를 유지한다)로 멈추지 말고 올라가야한다. 내리막에서는 엔진 브레이크를 십분 활용한다. 풋 브레이크는 급작스럽게 밟으면 차체가 홱 돌이가 낭패를 볼 수 있다. 급제동은 금물이며 속도 제어를 위해 브레이크는 가볍게 나눠 밟는 게 요령이다.


계방산 정상에서 본 강원도 겨울산의 장엄한 모습


*겨울을 즐겨야 전원생활이 행복해진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강원도 산골에는 빈집이 부쩍 늘어난다. 봄, 여름, 가을 등 3색 전원생활을 즐기던 많은 사람들이 겨울 혹한과 강풍, 폭설이 닥치기 전에 다시 도시(아파트)로 서둘러 빠져나간다. 주인 없이 덩그러니 버려진 채 떨고 있는 산골 둥지는 보기에도 안쓰럽다.

전원 엑서더스(탈출)는 11월부터 시작된다. 도시와 전원에 따로 집을 두고 주말에만 이용하는 사람들, 요양 온 환자와 가족들, 심지어 전원에 눌러앉은 지 오래된 이들 중 일부도 한 겨울에는 도시로 나갔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돌아온다.

물론 전원의 겨울은 따뜻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혹독하다. 12월 들어 한파와 눈보라가 몰아치면 한순간에 동토의 세상으로 바뀐다. 산골추위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전원생활 초기 1~2년은 더 더욱 덜덜 떨면서 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전원의 겨울은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다. 하지만 기나긴 동면과 침묵, 인내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쉼과 느림,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안식의 계절’이기도 하다.

눈에 덮여도 푸릇푸릇함을 유지하고 있는 쪽파

사실 전원의 겨울이야말로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봄, 여름, 가을보다 오히려 자연의 소리, 하늘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다. 배낭을 둘러메고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겨울 산에 올라보면, 사람의 그림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나와 산(자연)과의 순수한 교감만이 존재한다. 높은 산에 오르면 나무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 생긴 상고대가 다시 낮 동안 햇볕을 받고 녹아 흘러내리다가 재차 얼어붙어 ‘얼음나무’가 만들어진다. 가위 장관이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오직 나 혼자만의 ‘퍼펙트 산행’을 즐기기도 한다.

12월 전원에서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있는 즐거움도 맛보고, 바람과 눈을 벗 삼아 독서삼매경에도 빠져본다. 폭설이 내리면 산속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고라니, 너구리, 꿩과 참새 등은 항상 만나게 되는 자연의 친구다.

모든 게 정지된 듯 보이는 숲과 들에도 조용한 생명의 움직임은 있다. 귀한 약재로 대접받는 겨우살이는 한겨울에도 참나무 등에 붙어 살아간다. 작물 가운데 마늘, 호밀, 보리 등은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파릇파릇한 생명력을 뽐낸다. 인고의 과정을 통해 새 봄, 새 삶을 묵묵히 준비하는 이런 뭇 생명들을 대하노라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인생의 연단이라는 값진 교훈을 얻게 된다.

밤새 퍼붓는 눈

전원의 겨울은 그해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장장 5개월이나 된다. 도시인의 로망인 전원생활에서 사실상 겨울이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 겨울을 빼놓고선 온전한 전원생활을 말할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이 겨울을 기피하지 말고 즐겨야 비로소 전원의 사계절은 완성된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21만 명) 은퇴자를 비롯한 많은 도시인들이 새로운 인생2막을 위해 계속 전원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2013년 귀농·귀촌인은 무려 3만2,424가구에 달했다. ‘100세 시대’에 50대 중반 이후 은퇴한 도시인들이 맞이하는 인생의 계절은 전원의 겨울나기 과정과 많은 점에서 닮은 것 같다. 인생2막의 장으로 전원을 선택했다면 기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즐길 때 인생의 사계절 또한 멋지게 완성되지 않을까.



*12월의 전원 에피소드

강원도 홍천 산골에 자리한 필자의 집은 산자락을 끼고 있는 마을의 끝단에 위치하고 있어 꿩들이 제법 많다. 가끔 수컷(장끼) 한 마리와 암컷(까투리) 여러 마리가 어울려 떼를 지어 산자락 밑 뒷밭을 유유자적 거닐며 먹이를 쪼아 먹곤 한다.

꿩은 대표적인 텃새다. 한 지역에 일 년 동안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살면서 번식도 한다. 풍수에서 꿩은 날짐승 가운데서도 ‘명당 찾는 새’로 불린다. 꿩은 본능적으로 생기가 모인 혈을 정확하게 찾아낸다. 꿩이 땅을 파고 배를 비비며 놀거나 털을 뽑아 알을 낳은 장소는 좋은 자리다. 꿩은 매나 사람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알을 부화해 새끼를 번식하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풍수에서는 꿩이 알을 낳은 장소는 생기가 뭉쳐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고 바람이 잠자는 곳이라고 한다. 또한 꿩은 지진에 예민한데, 이때 날개소리와 울음소리가 대단히 커서 지진을 예고해 준다.

매년 겨울마다 전원에서는 따뜻한 집과 창고의 지하나 천정으로 침투하려는 쥐들과의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필자는 쥐를 잡기 위해 쥐덫(끈끈이)을 곳곳에 설치한다. 특히 덱 위와 아래, 지하창고 문 주변에 집중적으로 쥐덫을 설치한다. 쥐가 좋아하는 미니 동굴 모양의 둥근 플라스틱 안에 쥐덫을 놓는다. 그런데 잡으려는 쥐 대신 엉뚱하게도 새들이 애꿎은 희생양이 되는 ‘사고’가 종종 빚어져 안타까울 때가 있다. 대개 쥐덫에는 작은 벌레들이 먼저 걸려드는데, 곤줄박이 참새 등이 이 먹이를 먹기 위해 쥐덫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고 마는 것이다. 이 같은 불상사로 인해 필자는 집 밖에 설치한 쥐덫은 모두 회수했다.

새들의 불상사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한겨울 폭설이 내려 자꾸 쌓이면 산속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새들이 마을과 들녘으로 날아 들어오는데, 이때 집의 창문에 비친 하늘을 진짜 하늘과 구별하지 못하고 그대로 유리창을 들이박고는 그 충격으로 떨어져 죽거나 다치곤 한다. 겨울철 전원에서만 볼 수 있는 차마 웃지 못 할 광경이다.

겨울은 날짐승 뿐 아니라 들짐승과 산짐승 모두 먹이가 부족한 계절이다. 그래서 몇몇 들고양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집 주변의 음식물쓰레기 버린 곳을 뒤지며 다니곤 한다. 그래서 필자는 집 주변에 출몰하는 쥐와 뱀을 퇴치할 생각으로 지난해 겨울부터 들고양이 길들이기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고양이 사료를 사서 덱 밑에 가져도 놓는 등 지극정성(?)을 기울인 결과, 가장 붙임성이 있는 흰 고양이 한 마리를 거의 길들였다 싶었다. 하지만 너무 집 주변을 어질러 놓기에 딱 한번 야단을 쳤더니 그날 이후 싹 자취를 감춰 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양이는 개와는 달리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약하다고 한다. 그래도 이번 겨울 다시 한 번 들고양이 길들이기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박인호 전원칼럼리스트 ihpark33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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