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광해군이 중립 외교를 통해 나라의 위신을 잘 세웠다는 평가를 받은 이후 개혁 정책의 동력이 다소 떨어지기 시작하던 1619년, 백성들 사이에서는 권력층을 비꼬는 노래가 크게 퍼져나갔다. 정적(政敵)들이 일부러 퍼뜨린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국가 공식기록인 실록에는 웬만하면 속요, 특히 정권을 비방하는 내용은 좀처럼 실리지 않지만, 하도 유행을 탔던 노래이기에 그해 3월5일자 실록(광해군일기)에도 올랐다.
한국고전번역원 허윤만 연구원은 ‘더덕 정승‘은 광해군에게 더덕 넣은 꿀떡(蜜餠ㆍ밀병)을 상납한 이후 좌의정까지 올랐던 한효순(韓孝純)을 가르키고, ’잡채 판서‘는 잡채요리를 잘해서 나중에 호조판서로 발탁됐던 이충(李沖)을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광해군은 나름 발탁할 이유가 있어 승차시켰다고 볼멘소리를 낼 지 몰라도, 백성들이 느끼기에는 정승 판서 감이 아닌 인물임에도 결국 뇌물을 바친 덕에 고관대작의 지위를 누렸다고 보는 것이다.심지어, 가뜩이나 ‘깜’도 안되는 그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임금을 잘 보좌하지도 못하고 어진 정치를 인도하지도 못해, 후대에까지 불명예스런 이름으로 남았다고 허 연구원은 덧붙인다.
바야흐로 인사청문회 정국이다.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유기준 해양수산부, 유일호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 조용구 중앙선관위원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됐고, 오는 16일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청문회가 예정돼 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이석수 특별감찰관 후보자도 여야 일정조율만 되면 청문회의 도마위에 오른다.
이번에도 ‘혹시나’ 했지만 벌써부터 ‘역시나’라는 말이 들린다. 위장전입 의혹, 직무 부적합론, 권력을 통한 이권획득 의혹, 정치편향, 세금탈루, 부동산 투기 의혹 관련 팩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6~7년 간 우리는 숱한 비리 장관, 부조리 공직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3~4건 불법 비리 의혹은 ‘별 것 아닌 것’으로 느낄 정도로, 고위공직자 후보자의 부조리를 당연시 하는 ‘후천성 비리 면역증’에 걸린 듯 하다. “위장 전입 그거 기본 아닌가. 그걸 갖고….”라는 말이 사회지도층 사이에 공공연하게 거론될 정도로 우리는 깊은 불감증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고위직 비리와 부조리에는 전공필수와 전공선택이 있다는 말이 나돈다. 전공필수 5과목은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군복무특혜 ▷세금탈루란다. 전공선택 3과목은 ▷정치편향(대통령 측근 또는 참모 경력 포함) ▷직무 비(非)전문성 ▷전현직 공직 종사자로서 과도한 부수입 등이라는 것이다.
현행법은 비교적 약한(?) 비리인 위장전입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이하 벌금, 업무 방해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이고, 병역기피, 부동산투기, 조세포탈은 이보다 더 엄히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즉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감옥에 가야할 사람들이다. 인구 10만명당 한 해 범죄가 500건 안팎이라는 점, 즉 범죄발생률이 0.5%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렇게 많은 범죄를 한꺼번에 저지르기도 쉽지 않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잘 찾아내는 검찰과 경찰이 이미 제기된 단서만으로도 수사에 나설 사안일지도 모른다.
10년전만해도 단 한 건의 범죄로도 장관 총리가 되지 못했다는 점을 되새겨보자. ‘비리 불감증’에서 빨리 벗어나야 나라가 선다. 지금 교실에서 아이들이 따라 배우고 있다.
측근 중용도 문제가 많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불탄 도성의 여러 궁궐을 중건(重建)하기 위해 무리하게 토목 공사를 벌였다가 인심을 많이 잃었는데, 이때 호조 판서로 있던 ‘잡채판서’ 이충이 공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앞장서서 백성들을 수탈했다고 허 연구원은 전한다.
스스로 자백한 위장 전입 혐의에다 10여개월 뒤면 장관직 사퇴할 것이 자명한 자들은 또 어찌 하오리까. 지난 일을 반성하고 열심히 하겠다? 국민행복시대를 향해 달리는 국정 마당은 범죄자들의 개과천선의 장도, 한 개인의 이력서 세탁장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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