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의 화두는 무상급식이었습니다. 경남도가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해온 문 대표는 이날 홍 지사를 직접 만나 “어른들의 정치 때문에 경남 아이들이 급식으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상급식 문제가 몇년 전부터 대한민국 정치 헤게모니 싸움의 단골 메뉴가 되버린 만큼 단 한번의 회동으로 이 문제가 풀리길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 경남의 무상급식 중단 문제는 도청과 도교육청 간의 갈등에서 시작한 문제이기도 한 만큼 야당 대표가 가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문 대표도 “해법 마련을 위해 내가 중재할 길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온 것”이라며 스스로 ‘중재자’ 역할을 자인하기도 했습니다.
30여분 간 이어진 회동. 예상대로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설전’이 채웠습니다. 무상급식의 범위를 놓고 법적 판결을 근거로 “급식은 의무교육에 포함되지 않는다”(홍준표)와, “의무교육의 범위는 점점 넓어져야 한다”(문재인)까지는 ‘논쟁’ 이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예산 얘기만 하실 거면 저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겠다”(문재인), “접근을 감정적으로 하신다”(홍준표) 등 가시 돋힌 말들이 튀어나왔습니다.
결국 홍 지사가 문 대표를 배웅하는 길에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벽에다 이야기하는줄 알았다”(문재인), “나도 마찬가지다”(홍준표) 등 다소 감정적인 말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회동이 끝나고 당 안팎에서는 이날의 회동이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를 분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당 일각에서는 문 대표의 성과로 ‘무상급식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한 이미지’를 꼽기도 합니다. 친노계 핵심 관계자는 “홍준표는 무상급식을 중단한 사람, 문대인은 끝까지 무상급식을 지켜내려고 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날 회동은 (문 대표에게) 나쁘지 않은 구도”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진설명>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8일 경남도청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위) |
또한 새정치연합의 취약 지역 중 하나인 경남의 현안까지 대표가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남 민심을 얻겠다는 계산도 있습니다. 한 당직자는 “경남이 여당 성향이지만 아이들 급식 문제는 이념을 뛰어넘는 일이다. 무상급식 중단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민심을 얻고 이를 새정치연합에 대한 지지도로 이어갈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독’이 됐다는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일단 제1 야당의 대표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문 대표가 체급이 다른 홍 지사와 만난 것 자체가 손해 보는 장사였다는 분석입니다. 중앙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홍 지사를 이번 회동에서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세워주며 “홍 지사 좋은 일만 시켜줬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장에서는 “언변 좋은 홍 지사에게 문 대표가 말려들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루 전 영수회담에서 거둔 성과를 이날 무상급식 회동으로 스스로 이슈의 중심에서 물러나게 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를 조목 조목 지적하고 소득주도성장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청와대가 반박자료를 낼 정도로 궁지에 몰아 넣었는데 하루 만에 무상급식 회동으로 잊혀지게 만들었다는 평가입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창원 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아래) |
문 대표가 앞으로 무상급식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이날의 만남이 독이었는지 약이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풀어내든 아이들의 밥 그릇이 어른들의 정쟁에 휘둘리는 상황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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