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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가, 모텔, 찜질방이 미술관으로…예술이 근엄함을 벗었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미술관이 달라지고 있다. 하얀 벽, 네모난 공간으로 정형화된 화이트큐브가 아닌 상가, 모텔, 찜질방 등 버려진 건물을 재건축한 미술관이 잇달아 들어서고 있는 것. 근엄함을 벗고 친숙함을 입었다.

이러한 시도를 가장 ‘공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라리오(회장 김창일)다. 서울과 천안에 아라리오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창일 회장이 지난해 서울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와 제주도 동문, 탑동 일대에 3개 미술관을 만든 데 이어 지난 1일 동문 쪽에 또 하나의 미술관을 열었다.

올해 초 문을 연 소다미술관(대표 권순엽)도 비슷한 케이스다. 경기도 화성시의 한 대형 찜질방을 미술관으로 재건축했다. 건축가이기도 한 권순엽 대표가 직접 리모델링을 맡았다.

이보다 앞선 시도는 영등포 ‘커먼센터(대표ㆍ디렉터 함영준)’다. 큐레이터 출신의 대표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세운 커먼센터 역시 버려진 상가 건물이었다.

세 곳 모두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기획전을 마련해 이달 선보인다.

▶모텔, 바이크샵을 미술관으로=아라리오는 지난해 10월 제주도 북쪽 지역인 탑동과 동문 인근 극장 건물과 바이크샵, 모텔을 개조해 각각 아라리오탑동시네마, 아라리오탑동바이크샵, 아라리오동문모텔Ⅰ을 개관했다. 최근 아라리오동문모텔Ⅱ까지 4곳의 미술관이 모두 버려진 건물들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모텔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최근 새롭게 문을 연 제주 ‘아라리오동문모텔Ⅱ’. [사진제공=아라리오]

전시장 내부는 모두 노출 콘크리트 형태다. 벽지가 군데군데 찢어진 방, 타일이 벗겨진 화장실, 녹물이 스민 벽도 그대로 남겨뒀다. 새로 페인트칠을 하지 않고 건물의 골격을 드러냈다. 4곳 모두 외관은 강렬한 레드 컬러의 철제로 통일화했다. 이 때문에 미술관은 그 자체로도 강렬한 기운을 뿜어낸다. 

기존 건물의 골격을 그대로 두고 콘트리트 벽을 노출시켰다. 타일이 벗겨진 화장실도 그 모습 그대로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다. 녹물이 흘러내린 벽은 그 자체로 회화작품 같다. 때론 프로젝트 영상을 보여주는 스크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탑동시네마와 동문모텔Ⅰ에서는 김 회장의 소장품을 주로 선보인다. 탑동바이크샵과 동문모텔Ⅱ는 기획전으로 꾸며진다. 소장전과 기획전 모두 김 회장의 컬렉션 성향을 반영한듯, 파격적인 소재나 스케일이 압도적인 국내ㆍ외 조각, 설치 작품들이 많다. 한마디로 ‘센’ 작품들이다. 이 때문에 미술과 미술관이 강렬한 에너지를 서로 뿜어내며 충돌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제주 ‘아라리오동문모텔Ⅱ’ 외관. [사진제공=아라리오]

동문모텔Ⅱ는 개관전으로 박경근, 정소영, 잠비나이(뮤지션), 이주영 등 국내 젊은작가 4인의 전시를 마련했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로 채워라”는 김 회장의 주문이 고스란히 반영된 기획 전시다. 탑동바이크샵은 원로 전위미술가 김구림에 이어 젊은 ‘사진 조각가’ 권오상의 전시를 열었다. 스티로폼, 철사, 사진 등을 소재로 대형 구조물과 평면 시리즈를 선보였던 작가다. 두 곳 모두 전시는 9월 6일까지 계속된다.

▶찜찔방에 온 듯 편안하게…지붕없는 미술관=소다미술관도 방치된 대형 찜질방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하버드 건축대학원 출신의 젊은 건축가 권순엽(CINK) 대표가 직접 리모델링을 맡았다.

소다미술관이 위치한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은 도시개발 사업이 수년간 지연되고, 경기 침체로 인해 방치된 건물과 토지가 많았다. 밤이 되면 컨테이너 트럭들의 주차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위험 지역이라는 입소문 때문에 인적도 드물어 마치 유령도시를 방불케 했던 곳이다.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달라졌다. 문화, 음식, 예술의 복합공간이 들어서면서 인근 주민들의 발걸음도 잦아졌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소다(SoDa)미술관. 4월 11일부터 개관전을 개최한다. 방치된 대형 찜질방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재해석했다. 기존 찜질방 구조를 그대로 살리고 화물 컨테이너를 이용해 내부 전시공간을 구성했다. 목욕탕 앉은뱅이 의자를 들여와 쉼터를 만드는 등 관람의 재미를 살렸다.

소다미술관 역시 방치됐던 대형 찜질방 건물의 기존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살렸다. 여기에 화물 컨테이너를 들여와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건물 일부는 천장을 뚫어 하늘을 보이게 했다. 그래서 ‘지붕없는 전시장’이다. 관람객들의 재미를 위해 앉은뱅이 목욕탕 의자를 곳곳에 배치하기도 했다.

소다미술관은 애초부터 젊은 작가들의 전시공간, 대중과의 소통공간을 표방하고 나섰다. 전시, 공연은 물론, 마켓과 푸드 페스티벌 등 여러 콘텐츠를 이 안에서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다.

11일 시작하는 개관전 타이틀은 ‘Re:born’이다. 버려진 사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디자인 재생 프로젝트다. 미술관의 DNA를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3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다. 74개의 작품들은 재활용 옷걸이에 걸린다. 전시 이후에는 에코백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7월 12일까지 볼 수 있다.

▶버려진 상가 건물, 예술로 재건축하다=2013년 11월 문을 연 영등포 ‘커먼센터’는 낙후된 서울의 부도심, 영등포의 사창가 한 가운데 버려진 상가 건물에서 출발했다. 불친절한(?) 건물 탓에 미술관 앞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총 4층으로 이뤄진 건물은 각 층마다 5~6개 작은 방들로 나뉘어져 있다. 벽지도 뜯다 말았다. 전시장은 거친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커먼센터. 사창가 한 가운데 3년 넘게 버려졌던 상가 건물을 재건축해 젊은 작가들의 예술로 채운 공간이다. 지난해 개관전으로 선보였던 ‘오늘의 살롱’ 전시 전경.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미술가가 운영하는 이 공간에서는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젊은 미술가들의 패기 넘치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다. 오늘날 경직된 미술계 시스템의 ‘빈틈’을 찾아내겠다는 취지다.

“작품 판매 수익은 공간의 최소 운영비를 제하고 모두 공공의 이익에 걸맞는 전시를 위해 사용한다”는 게 함 디렉터의 목표이자 커먼센터의 존재 이유다.

커먼센터는 오는 17일부터 5월 25일까지 미술과 디자인을 융합한 전시 ‘혼자 사는 법’을 개최한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1인 가구 현상의 사회적 의미를 미술의 영역에서 환기시키는 전시다. 직거래 장터와 함께 공연, 강연, 워크숍까지, 전시 외에도 놀거리가 넘쳐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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