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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세계사] 황제 네로, 왜 마마보이가 됐을까

[HOOC=이정아 기자] 아흐레 동안 붉게 타오르는 로마 시내를 내려다보던 한 시인이 시를 읊습니다. 위대한 영웅의 삶을 기리는 자작시였죠.

이윽고 이 시인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명령합니다.

“눈물을 받아서 보관하라. 역사적으로 남겨 둬야 할 가치가 있는 눈물이니….”

이쯤 되면 눈치를 채셨을까요. 이 시인은 로마 제국의 5대 황제인 네로입니다.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네로가 붉게 타오르는 로마 시내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보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네로는 로마에서 56km 떨어진 악티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는데 로마의 한 창고에서 큰 불이 나자 급히 궁정으로 돌아왔고 이재민에게 식량을 나눠주며 참사를 수습했다고 설명하죠.

그런데 성난 민심이 수습되지 않자 네로가 그리스도교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합니다. 그래서 21세기의 역사는 네로를 나르시즘에 젖은 군주이자, 어머니의 치마폭에 휘둘린 마마보이. 그러나 끝내 어머니를 제 손으로 죽인 폭군의 대명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오빠인 칼리굴라의 유골을 바라보는 아그리피나. 그녀는 칼리굴라 황제가 총애하던 레피두스와 관계를 맺고 오빠의 암살을 도모했다.

▶네로를 위해 남편을 죽이다= 황제 네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小 아그리피나)의 삶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윤비(尹妃)를 말하지 않고 조선의 연산군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아그리피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네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아그리피나도 두 번 결혼한 전적이 있었고요. 첫 번째 남편에게서는 아들 네로를, 두 번째 남편에게서는 부귀를 얻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유명한 학자인 프리니우스에 따르면 네로는 ‘어머니 자궁에서 발부터 나왔다’고 하네요.

그녀는 나이 32세에 황제와 결혼합니다. 황제의 어머니가 되는 건 그녀가 평생을 건 열망이었기에, 황제의 나이가 57세라는 것과 황제가 자신의 숙부라는 사실은 그녀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죠. 도덕적인 양심은 뒷전으로 돌리면 그만이었습니다. 숙부와 질녀와의 결혼을 금지하던 로마 혼인법을 개정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이쯤에서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덧붙일게요. 그를 바라보는 학자들의 시선이 꽤 흥미롭거든요. 학계에선 그가 술과 여인을 밝히는 호색가이자 야무지지 못한 얼간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각에선 그가 조선사 성종(成宗)에 버금가는 훌륭한 황제였다고 전합니다. 악명을 떨친 황제의 전 부인 메살리나에게 무시당하는 어리숙한 황제이지만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의 치세를 이어받아 로마의 행정개혁을 이뤄냈기에, 두 가지의 시선 모두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황제의 아내가 된 아그리피나는 자진해서 국사에 관여하고 원로원 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황제 옆에는 항상 아그리피나가 있었고 그녀의 권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게 됩니다. 그녀의 초상화가 신처럼 숭배됐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아그리피나는 모든 매력을 뽐내며 다해 황제를 사랑(?)합니다. 자신의 지위가 언제 위협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숨긴 채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잠자리가 잦아질수록 베개 밑 송사가 잘 먹혀 들어가는 법인 걸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네로가 황태자로 책봉되기에 이릅니다. 자식의 등 뒤에서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고 싶었던 아그리피나의 세상이 꽤 일찍 찾아온 것입니다.

로마의 3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네 번째 아내인 아그리피나에게 독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 독버섯이 신들의 음식이라고?= 권력을 쥔 아그리피나에게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이내 그녀는 부루스를 친위대 대장으로 앉히고 아들의 정적이 될 것 같은 사람들은 모두 살해시키고 재산을 몰수해버립니다. 그녀는 정치 투쟁과 권모술수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고 싶었기 때문이죠.

황제는 뒤늦게야 아내의 ‘진짜’ 의중을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황제가 네로를 황태자로 임명한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겠다고 생각할 즈음, 아그리피나는 황제에게 독버섯을 먹입니다. 그것도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 자리에서 말입니다.

서기 54년 10월 12일. 황제는 접시 한가운데 있던 큰 버섯을 집어 먹습니다. 의사 크세포논이 축 늘어진 황제를 세워 목구멍에 독을 발라놓은 새의 깃털을 넣습니다. 황제는 단 한 마디의 유언도 없이 12시간 만에 죽게됩니다. 남편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그리피나는 그의 치적을 찬양했을 뿐이죠.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본 네로가 명언을 남깁니다.

“독버섯은 신들의 음식임에 틀림이 없다.”

(*) 황제로 즉위한 네로, 이복동생을 독살하고 “정치에 간섭하며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어머니 아그리피나마저 살해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바람난세계사] 13일 자에 이어집니다.

(*) 참고문헌=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한길사.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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