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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김아미]아트디렉터와 크라프트맨
가로 5m 대형 화폭에 새겨진 커다란 샹들리에. 작품 몇 점으로 어두운 전시장이 환해졌다. 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한 회화작품 같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니 일일이 자수를 놓아 만들었다. 사람 손으로 만든 수공예 작품이다.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이미지에 관람객들은 단박에 압도된다. 여기에 스타 작가의 명성도 한 몫 한다. 국내 최고 미술대학 출신으로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비엔날레를 통해 이름을 알려 왔다. 작품에 대한 진정성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업은 분단 국가의 현실을 기록하는 과정이다. 단위 픽셀이 보일 정도로 확대한 이미지를 ‘복잡한 경로’를 통해 북한 자수 노동자들에게 보낸 후, 그 결과물을 되돌려받는 형식이다.

국내 메이저 화랑에서 작가의 전시를 열었다. 전시에는 그 ‘결과물’만 내걸렸다. 전시에 앞서 마련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작가에게 물었다.“자수를 둘 줄 아나.” 대답은 “아니요”였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수준 정도라고 했다. “이 작품을 직접 만들 수는 있겠는가”를 물었다. 대답은 역시 “아니요”였다.

현대미술은 디렉팅이 좌지우지한다. 아티스트는 날 것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아트 디렉터의 역할을 맡고, 실질적으로 이를 실현하는 것은 또 다른 아티스트들이다. 일명 크라프트맨(Craftman), 수공예 기술자들이라는 얘기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뒤에도 일본인 엔지니어 슈아 아베가 있었다. 한국인 테크니션 이정성씨의 손도 빌렸다. 생전의 작가가 드로잉으로 아이디어를 내면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기술자들의 몫이였다.

요즘 미술시장에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단색화 그룹의 한 원로 작가도 고령으로 인한 손떨림 탓에 조수들이 그를 대신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회화 분야에서조차 아트 디렉터와 크라프트맨이 따로 존재하는 셈이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작품 값이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도 작품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입맛이 씁쓸하다. 아마도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리라. 텅 빈 전시장에 돌 한덩이를 가져다 놔도 작가가 “이것이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로 봐야 하는 것이 현대미술이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떠나 그 현대미술이라는 게 장삼이사 일반인의 눈에는 도무지 ‘눈속임’ 같다. 관람객들은 ‘자수 회화’ 작가의 자수 작품을, 비디오아티스트의 비디오 작품을, 단색화 작가의 단색화를 기억한다. 자수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력의 강도를 모르는 작가에게 ‘자수 회화가’라는 별명이 붙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과정에 아무리 현란한 개념이 더해질지라도 말이다.

당대의 미술은 후대에 제대로 평가받는다. 학계가, 시장이, 그리고 대중이,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오랜 세월에 거쳐 검증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어떤 작가가, 어떤 작품이 남게 될 것인가. “작가들의 열정과 혼이 담긴 작품이 간절하다”던 국내 경매회사 대표의 말을 곱씹게 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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