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지난 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과 러시아의 정치적 관계는 싸늘해졌지만, 양 진영의 에너지 기업들은 ‘밀회’를 즐기고 있다. 미국 정유사들이 정부 눈치를 보며 대(對) 러시아 활동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유럽 정유사들이 사업협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다음달 말로 끝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연장 여부를 이달 중 결정하지만, 실효성 논란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1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BP는 빠르면 이번주 안에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즈네프트와 시베리아 유전의 지분 20%를 매입하는 협상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이탈리아 에니(Eni), 노르웨이 스태트오일도 자국 정부로부터 러시아 로즈네프트와의 합작사에 기술과 서비스를 전수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다.
네덜란드와 영국 다국적 기업 로열더치셸 또한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의 석유 부문 자회사 가스프롬 네트프와 시베리아 유전관련 합작사 설립을 계속 논의 중이다. 셸은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다른 러시아와의 협력 프로젝트도 계속 진행할 수 있다는 승인을 받았다.
FT는 “유럽과 러시아 정유사간 협력 확대는 (대러 제재와 관련해)유럽과 미국간의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격차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과 러시아와의 모든 협력을 중단시켜서, 엑손모빌과 로즈네프트간의 10개 합작 사업은 모두 보류된 상태다. 반면 EU는 대러 제재 실시 이전에 시행돼 온 러시아와의 협력 사업은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유럽 각국은 감시가 느슨해진 분위기를 틈타 자국 기업의 러시아 진출을 눈감고 있다.
제임스 핸더슨 옥스포드대 에너지학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유럽 기업들은 미국 경쟁사들보다 분명 더 자유롭게 사업하고 있다”며 “EU 제재는 소급적용하지 않지만 미국은 소급적용돼, 미국 기업들이 엄청나게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대러 제재 열의도 작년에 비해선 한풀 꺽였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판 다보스 포럼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의 지난해 행사에는 미국 기업의 참가를 적극적으로 막았지만 올해는 아무런 관련 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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