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리더스카페] 말간 햇살 아래 글 한줄만 읽어도 배부르다
<이 가을에 만나는 두권의 산문집>

가을엔 아무래도 시보다 산문이 더 잘 어울린다. 말간 햇살을 따라 어딘가에 닿고 싶은 글 한 편을 만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시인 안도현이 ‘잡문’이라는 문패를 달아 내놓은 ‘안도현 잡문’(이야기가있는집)은 현실에 절망해 시를 쓰지 않겠다고 절필을 선언했던 시인이 찾아낸 새로운 글쓰기 형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현실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시, 능력이 없는 시, 하나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시를 오래 붙들고 앉아있는 것이 괴롭다”며, 찾아낸 길은 시와 산문 사이 쯤이다. 시인은 140자 트위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장국 천천히 떠먹듯이 전동균의 새 시집 ’우리처럼 낯선‘을 읽었다. 시인의 목소리가 겸손해서 촉촉한 물기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나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별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안도현 잡문’에서)

‘안도현 잡문’은 3년 동안 트위터에 올린 1만여개의 글 중에서 추려낸 것으로 잡스러운 문장으로 어떻게든 세상에 말을 걸어보려는 시인의 마음이 녹아있다. 모두 244꼭지로 산문이자 하나의 시라 해도 좋다. 작가의 머리를 스쳐간 잡념들과 새와 산과 나무를 보며 하릴 없이 중얼거렸던 말들을 담아냈다는 게 시인의 잡문에 대한 소개다. 그는 시의 틀에서 벗어난 마음을 이렇게 적었다.

“기를 쓰고 시를 읽었는데, 지금은 시나 읽으니 참 좋다. 기를 쓰고 시를 썼는데, 시를 쓰지 않으니까 더 좋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신이 읽은 시 하나를 소개했다.

“할머니 어디 가요?/-예배당 간다//근데 왜 울면서 가요?-울려고 간다//왜 예배당 가서 울어요?/-울 데가 없다.” 김환영의 동시 ‘울 곳’이란 시다.

이 잡문집에는 주위의 작은 것들 속에서 발견한 깨달음과 작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들이 많다.

“저녁은 안으로 나를 접어 넣어야 하는 시간이다. 나무들이 그렇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은 천천히 걷다가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양말을 벗어봐야지. 내 맨발이 햇볕을 빨아먹다가 마구 키득키득거리겠지. 내가 바라는 나라가 그런 나라인데.” “산길 걷다가 갑자기 맞는 소나기는 연애처럼 난데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저 좋아하였다. 점점이 옷자락에 묻은 빗방울이 마르지 않았으면 하였다.”

사물을 깊게 바라보고 예민하게 관찰하는 시인의 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설레지 않으면, 하늘을 보면서 기다리지 않으면, 첫눈이 아니다. 첫 키스가 그러하듯이.“”아침에 가랫대로 잠깐 눈을 밀었다.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어본 일이 대체 얼마 만이었는지. 눈을 밀고 쓸어낸 자리가 제일 먼저 길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얼마나 소소한 즐거움인지.”

길지 않은 글들을 따라 시인이 바라본 풍경을 함께 느끼고 바라보는 산책의 즐거움을 준다.

탁월한 이야기꾼 김탁환의 ‘아비 그리울 때 보라’는 책을 부르는 책이다. 10여년 동안 각종 지면에 써온 글 50편을 추린 것으로 꼭지마다 책을 불러놓아 글을 읽은 뒤 자연스럽게 책을 찾게 되는 글이다. 책은 일상속에서 만난 외부의 목소리와 풍경이 작가의 내면을 흔들어 깨운 순간을 진지한 성찰과 함께 담아냈다. 이 가운데 작가가 ‘아비 그리울 때 보라’는 책 제목을 따온 이야기 한 편이 담긴 글이 있다.

“ ‘왜 소설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다양한 글씨체가 뒤섞인 ‘임경업전’의 말미에 짧은 필사 후기가 덧붙었다. 결혼한 딸이 아우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친정에 와서 ‘임경업전’을 베끼다가 마치지 못하고 돌아간다. 아버지는 소설 애독자인 딸을 위해 종남매와 숙질까지 불러 함께 필사를 마친 뒤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 ‘필사의 핵심은 공감과 자발성’에서)

혈육간의 정이 그리울 때 한 글자 한 문장 눈에 담았을 딸의 모습이 선연하다.

작가는 팟캐스트 ‘정은임의 영화음악’이란, 추억의 방송과 우연히 마주친 순간을 들려주며 당신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오면 걸음을 멈춘 후 이 소리가 하필 당신을 감동시키는 이유를 따져보라고 권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번째 방법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이라는 트뤼포 감독의 명언대로, 두 번 보고 두 번 들을 때 비로소 처음 보이고 처음 들리는 법이라고 작가는 깨달음을 전한다.

‘가까이서 본다고 더 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눈물은 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가’ ‘비상은 파괴요, 설렘이다’등 경구와 같은 문장과 수많은 콘텐츠들이 하나의 글만 읽어도 배부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