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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행여신’ 그 이름 장유정
연출작 ‘김종욱찾기’ ‘그날들’ 등 잇단 성공…한국적 소재 ‘형제는 용감했다’ 7년째 흥행중…“준비된 도전이 성공열쇠”
초연한지 7년 지난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에는 영화 ‘매드맥스’의 기타맨 패러디가 나온다. 그런가하면 “재종백숙모(7촌 숙모)야. 가까운 사이지”와 같은 케케묵은 단어가 나오는데 관객들은 빵빵 터진다. 이 작품은 안동 종갓집의 두 형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산을 놓고 다툰다는 내용이다. 상갓집에다 망건을 쓴 유림들과 “왔니껴”와 같은 안동사투리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같은 한국적인 소재로도 얼마든지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뮤지컬이다.


제작사인 PMC프러덕션의 송승환 회장은 “‘난타’가 돈을 많이 벌어다 준 자식이라면 ‘형제는 용감했다’는 귀한 자식”이라는 말로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뮤지컬계 흥행 보증수표인 장유정 연출이 극본을 쓰고 연출했다. 장 연출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 ‘그날들’ 등을 잇달아 성공시켰으며, 영화 ‘김종욱 찾기’ 감독을 맡기도 했다.

장유정 연출은 1999년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뒤 한동안 맨발로 다녔다. 머리를 박박 밀고 한겨울에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장 연출은 “어릴 때는 자유로움을 갈구하거나 터질 것 같은 욕구가 있을 때 기이한 행동을 한 것 같다”며 “지금은 쇼핑이라든지 좀더 세련되거나 사람들이 모르는 방법으로 객기를 부린다”며 웃었다. [사진제공=PMC프러덕션]

▶재미와 감동 모두 잡은 ‘형제는 용감했다’=지난 14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유정 연출은 “종갓집인 외가에서 보고 자란 것이 이 작품을 쓰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외할머니께서 외할아버지와 둘이서만 밥을 먹은 것이 평생 열번 밖에 안됐대요. 항상 집에 손님이 많았으니까요. 명절 연휴 마지막날에 외갓집에 가도 초상집에 온 것처럼 신발이 많았어요. 신발 정리는 제 몫이였죠”

장 연출은 2005년 ‘오!당신이 잠든 사이’와 2006년 ‘김종욱 찾기’를 잇달아 성공시키며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뮤지컬 제작사들로부터 작품 의뢰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형제는 용감했다’의 구상을 얘기하면 “그거 말고 딴 거 하자”는 반응이 돌아왔다.

“PMC프러덕션 프로듀서들도 ‘안동은 고루하니까 재개발 지역으로 바꾸자’, ‘상갓집이 꼭 나와야 하냐’는 반응을 보였어요. 하지만 송승환 회장님께서 ‘장 연출이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하셨죠”

그 결과 2008년 초연 당시 공연 관계자 및 문화부 기자가 선정한 ‘상반기 가장 좋았던 창작 뮤지컬’로 꼽혔고, 더뮤지컬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까지 국내에서 6차례 무대에 올랐고, 2013년 일본에서도 공연했다. 현재 영화화를 위해 시나리오 작업도 진행 중이다.

장 연출은 작품을 위해 퇴계 이황의 종손을 여섯 번이나 찾아간 끝에 만나기도 했다. “당시 종손이 100세셨는데 문제는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거예요. 제가 ‘저 문과 문 사이에 있는 문양은 무슨 의미죠’라고 여쭤보면 ‘자네 들어오다가 수절탑을 보았는가’ 이렇게 다른 얘기를 하시기도 하고요. 그때 ‘정보를 물어볼 게 아니다. 이 분의 자태나 자긍심은 돈 주고도 못 본다’라고 생각했죠”

작품 속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할아버지나 꼿꼿한 유림들은 당시 취재를 바탕으로 탄생한 캐릭터다. 하얀 한복을 입고 힙합을 하는 할아버지 등 기발한 발상이 웃음을 주는 한편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깊은 사랑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한다.

“극중 아버지는 종갓집의 전통을 이으려고 자신의 삶을 희생했어요. 하지만 내 아들들은 발목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우물을 메워요. 우물이 마르면 종갓집도 별 수 없다고 하니까요. 여태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행동이죠. 자기가 뽑은 대통령도 부정하기 힘든 마당에 자식들을 위해 결단을 내린 거예요”

장 연출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여섯 차례 공연을 거치는 동안 작품을 정교하게 갈고 닦아왔다. 예를 들어 2막 ‘난 니가 싫어’라는 곡에서 예전에는 유림들이 전부 나왔지만, 올해 공연에서는 아들들과 부모만 등장시켜 감정의 밀도를 높였다. 또 마블 영화의 보너스 영상처럼 커튼콜 뒤에 새로운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개막 전 치밀한 기초공사=한해에만 200여편이 쏟아질 정도로 창작뮤지컬 시장은 홍수다. 하지만 장 연출은 2002년 데뷔작 ‘송산야화’ 이후 13년간 연출을 맡은 작품 수가 손가락으로 꼽힌다. “재공연을 하는 것이 제작자나 창작자 모두에게 좋아요. 초연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쉽지 않고 넘어도 10%가 안되니까요. 그래서 두번째 공연할 때까지 새 작품은 안 맡아요”

<그녀를‘ 흥행퀸’으로 이끈 대표작들> 뮤지컬‘ 김종욱 찾기’

현재 대학로에서 ‘형제는 용감했다’와 ‘오!당신이 잠든 사이’가 동시에 공연 중이다. ‘김종욱 찾기’는 내년 10주년을 맞아 한국, 일본, 중국 3개국에서 동시 공연될 예정이다.

<그녀를‘ 흥행퀸’으로 이끈 대표작들> 뮤지컬 ‘그날들’
<그녀를‘ 흥행퀸’으로 이끈 대표작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이처럼 극본을 써놓고 무대에 안 올라간 작품은 있어도 무대에 올라가 망한 작품은 없었다. 무대에 올리기 전 치밀한 기초공사 덕이다. 장 연출은 기자가 주인공인 작품을 쓰기 위해 언론대학원을 수료하기도 했다. “사람을 넣기 위해 구멍을 판다면 사람 크기보다 더 크게 파잖아요. 저도 더 깊고 크게 파기 위해 계속 뭔가를 하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다고 무모한 욕심을 부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잖아요. 준비된 도전을 해야 하는데 준비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장 연출은 아무리 바빠도 한달에 책 몇 편, 일주일에 영화 몇 편 등 정해진 숫자를 채우고 있다. 영화, 연극, 창극, 전국체전 개막식 등 다른 분야 연출에 도전하는 것도 준비된 도전을 위한 것이다.

“제가 어디가서는 갑처럼 보여도 어디가서는 슈퍼을이기도 해요.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죠”

장 연출은 다음 작품으로 국립창극단의 ‘흥부가’를 준비 중이다. 그는 어린 시절 판소리를 배워 호남예술제 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판소리를 부르면 애들이 각설이라고 놀리니까 플루트도 배웠어요. 그래도 다룰 줄 아는 악기 중에 제일 자신있는 게 가야금이예요. ‘흥부가’는 극적 반전이 없어서 대본만 보면 고민에 빠지는데, 노래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요즘 국립창극단이 워낙 센세이션한 작품을 많이 만들고 있는데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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