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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치 실뜨기같은, 너와 나의 관계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작업을 시작하기 전 청소부터 합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작업실을 보면 청소하기 전보다 내가 더 똑똑해진 기분이 듭니다. 나는 취미가 작업이며 특기가 청소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언젠가 복잡한 서랍을 정리하는 방법이란 게 있더군요. 서랍을 열어보기 전 눈을 감고 내게 필요한 것을 기억해 낸 다음 그 밖의 모든 것을 버리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관계라고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수많은 전화와 문자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연락처 목록을 더듬어보면 당장 샤워하고 보고 싶어 달려가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실뜨기를 떠올렸습니다. 매듭 하나 연결된 단순한 실을 엮고 상대에게 건네는 일. 고양이요람(실뜨기) 위의 즐겁지만 아슬아슬한 게임처럼 관계란 내가 만드는 복잡한 삶을 교환하는 일입니다.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줍니다. 나는 항상 작업만큼 쉬운 것은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음악가에게 음악이, 무용수에게 춤이, 작가에게 글쓰기가, 화가에게 그림만큼 쉬운 일은 없습니다. 그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드는 너와 나의 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 문형태 작가 노트 中

Cats cradle, 캔버스에 유채, 130.3×162.2㎝, 2015 [사진제공=선화랑]

문형태 작가가 1년여만에 더 핼쑥해진 모습으로 전시장에 나타났다. 개인전과 그룹전, 아트페어까지 한 해 동안 수십차례 전시를 치르던 작가는 돌연 홀로 미국 여행을 떠났었다. 끊임없이 작품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일상에서 탈출구가 필요했을 법도 했다. 혹은 오랜 연인과의 이별이 계기가 됐거나.

어쨌거나 두어달을 미국에서 보냈다. 그곳에서도 제대로 쉬지는 못했다. 작품 활동에 필요한 영감을 얻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다녔다. 어느 순간 뇌리를 스친 생각. “많이 본다고 그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구나. 그림이 달라지려면 머릿 속이 달라져야 겠구나….”

문형태 작가의 개인전 ‘실뜨기(Cat’s cradle)’가 오는 10월 3일까지 선화랑(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다. 회화 70여점과 오브제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전시다. 

Traveler, 캔버스에 유채, 50.0×72.7㎝, 2015 [사진제공=선화랑]

실뜨기는 두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실의 양 끝을 손에 매어 얽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놀이다. Cat’s cradle은 직역하면 ‘고양이의 요람’이지만, 실뜨기를 할 때 실을 얽어 만든 모양이 마치 고양이 요람과 비슷하다 해서 유래된 명칭이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실뜨기에 비유했다. 실이 꼬이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꼬여 버리고야 마는 것. 여기에는 화가로 인기와 유명세를 얻으며 겪게 된 문형태 작가 개인의 이야기도 반영돼 있다.

눈을 감고 떠올려보자. 우리의 일상엔 당장 필요 없는 것, 당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복잡한 실타래로 엉켜 있는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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