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와 맞닿아 있는 해안을 제외하고는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에 둘러싸여 있고, 사라왁 주의 림방에 의해 두 지역으로 나뉘어 져 있다. 브루나이는 보르네오 섬에만 영토가 있는 유일한 국가이며, 섬의 나머지 부분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속해 있다. 인구는 대략 45만명이다
브루나이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아우르던 마자파히트 제국의 일부였다. 1578년 스페인에 점령당했고 17세기 중반에서야 포르투갈과 동맹하며 독립을 쟁취한다. 하지만 영국과 네덜란드가 이 지역에서 식민지 확장을 본격화하면서 급격하게 힘이 약해진다. 19세기 초 내란이 발발하자 당시 브루나이 국왕은제임스 브룩이라는 영국인에게 반란군 진압을 맡긴다. 하지만 반란을 진압한 브룩은 브루나이 내에 소왕국을 건설하고, 싱가포르와 홍콩에 있던 영국해군을 이용하여 30여년간 브루나이 영토를 잠식한다. 결국 브루나이는 1888년부터 영국령에 편입된다.
1959년 영국은 브루나이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헌법제정과 의회구성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까지 준비하였다. 1962년에는 브루나이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가 마지막이다.
1967년 술탄 하사날 볼키아 국왕이 아버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3세로부터 왕위를 물려받는다. 볼키아 국왕은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동시에 말레이시아 연방으로의 편입을 추진한 반발세력을 제거하는 데 힘썼다. 이후 비상조치법을 발표해 2년만다 갱신함으로써 세습군주제의 정당성을 확립했다.
절대왕정을 유지한 채 1984년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한다.
영국의 비호(?) 아래 독립하면서 볼키아 국왕은 절대왕정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힘썼다. 다른 한편으로는 말레이 전통을 유지하고 이슬람을 국교로 삼겠다고 선포해 국민 다수의 지지를 확보했다.
1929년 발견된 석유는 왕정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하지만 20~30년 후 고갈이 예상되면서 왕실은 관광 등 새로운 수익사업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동시에 국민들에 대한 강력한 통제장치도 마련했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