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기간 CFO에 내부조사 맡겨…신임회장도 前 제품 총괄책임자
피에히 前회장 지주사 이사 건재
폭스바겐그룹이 유해가스 저감장치 조작사건에도 불구하고 조작기간 동안 핵심경영진들에게 계속 중책을 맡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올 4월까지 최고경영자(CEO)였던 페르디난트 칼 피에히 전 회장 등 ‘오너그룹’이 이번 사태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려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폭스바겐그룹이 최근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한스 디터 푀취에게 내부조사를 맡겼다고 2일 보도했다. 그는 2003년부터 줄곧 그룹 이사회의 일원으로 경영전반에 간여해왔다. FT는 “오너인 포르셰 가문과 피에히 가문이 푀취를 지지한 덕분”이라고 꼬집었다.
기관투자자인 ‘헤르메스이쿼티오너십(HEO)’의 한스 크리스토프 힐트 이사도 “퓌체에게 내부조사를 맡긴 것은 명백한 이해상충”이라며 “중량감 있는 외부인사를 영입했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형식을 취했던 마르틴 빈터코른 전 회장도 건재하다. 그는 현재 폭스바겐그룹의 지주사인 포르셰홀딩스의 이사회 의장이다. 그룹 회장 직함만 내놨을 뿐 그룹의 최고 정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2007년부터 그룹 경영을 이끌었던 빈터코른은 이번 조작이 있었던 기간 내내 CEO였지만 “조작 사실을 몰랐고, 다만 기업의 앞날을 위해 물러난다”며 지난 23일 사퇴했다.
마티아스 뮐러 신임회장도 따지고 보면 이번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2007년부터 2010년 포르셰 최고경영자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폭스바겐은 물론 그룹 제품부문의 총괄책임자였다. 이번 조작이 발생한 것은 2009년부터로 뮐러 회장이 제품부문을 책임질 때다.
또 빈터코른 전 회장과 뮐러 신임회장, 내부조사를 책임진 퓌체 CFO 등이 모두 포르셰홀딩스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현직 이사들이다. 뮐러 회장은 적어도 지주사에서 만큼은 아직 빈터코른 전 회장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게다가 뮐러 회장의 경력은 그를 빈터코른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하기에 충분하다. 빈터코른 회장이 2002년 아우디 CEO가 됐을 때 뮐러를 핵심참모로 기용했다. 2007년 빈터코른 회장이 그룹 경영을 맡았을 때에도 뮐러를 그룹 제품과 브랜드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임명했다.
폭스바겐의 지배구조를 감안할 때 오너 그룹의 지원 또는 묵인 없이 이들 전문경영인들이 계속 자리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오너 경영자였던 피에히 전 회장도 이번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빈터코른 전 회장이 올 4월 단독 CEO에 오르기 전까지는 피에히 전 회장이 경영의 최고책임자였다.
이번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한 피에히 전 회장이, 역시 책임을 져야할 측근들을 앞세워 조작사건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추론도 가능한 셈이다.
한편 독일 검찰은 이번 사태와 관련 10여 건의 형사고발이 제기됐지만, 증거가 없어 경영진에 대한 공식적인 수사는 벌이지 않고 있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