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 1호점을 낸 후 이 일대를 기반으로 성장해온 만큼 셰이크 색의 서부 진출은 파격 그 자체였다. 더구나 서부는 경쟁자 ‘인앤아웃버거(In-N-Out BURGER)’의 앞마당이란 점에서 셰이크 색의 발표는 일종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린시 스나이더 인앤아웃버거 오너 |
셰이크 색의 기습을 받은 인앤아웃버거는 67년째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일대에만 집중해온 ‘로컬 브랜드’다. 이미 서부에선 맥도날드와 버거킹을 누르고 햄버거 시장을 평정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너가 불과 33살의 여성이란 점이다. 린시 스나이더(Lynsi Snyder) 사장은 총성없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미국의 햄버거 시장에서 꿋꿋이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고 있다.
▶ 가족의 잇단 죽음으로 24살에 상속=일부 언론에서 린시를 억만장자로 소개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아직은’ 아니다. 포브스는 현재 린시의 자산을 5억달러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2년 뒤 억만장자의 꿈은 현실이 된다. 린시가 35살이 되면 인앤아웃 지분 100%를 물려받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스나이더 가문의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미 서부에 집중된 인앤아웃버거 매장.[사진=인앤아웃버거 홈페이지] |
인앤아웃버거는 린시의 조부모가 1948년 창업했다. 해리 스나이더(Harry Snyder)-에스더(Esther) 부부는 당시 캘리포니아 볼드윈 파크에 최초로 드라이브스루(drive thruㆍ차에 탄 채로 이용할 수 있는 식당) 매장을 열면서 버거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그러나 해리가 67세에 사망하면서 경영권은 차남 리처드(Richard)에게 넘겨졌다. 17년 후 리처드마저 비행기 사고로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회사는 리처드의 형이자 린시의 아버지 가이(Guy)가 승계받았다.
하지만 불운은 계속됐다. 1999년 가이마저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지는 등 스나이더 가문 2세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등졌다. 당시 린시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결국 1세대 창업자였던 할머니 에스더가 다시 경영에 나섰지만 7년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스나이더 가문의 유일한 자손인 24살의 린시가 회사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앤아웃버거 |
대신 할머니는 지분 승계가 순차적으로 이뤄지도록 했다. 현재 두 개의 신탁회사가 인앤아웃버거의 지분 72.4%를 보유하고 있는데 린시는 25살 때 이 중 1/3을 가질 수 있었고, 서른 살이 돼서야 절반을 차지할 수 있었다. 35살이 되면 신탁회사가 가진 지분 전량을 갖게 된다.
나머지 23.6%도 이미 린시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2년만 지나면 인앤아웃버거의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인앤아웃버거의 현재 기업가치를 11억달러로 평가했다. 때문에 미 언론들은 린시를 사실상 억만장자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서울 신사동에 인앤아웃버거 팝업스토어가 생겼을 때 몰려든 인파. 올 3월에도 신사동에서 하루 선착순 한정판매 행사가 열렸다. |
▶ 메뉴는 단 3개, 프랜차이즈화 거부=린시는 그동안 회사를 이끌면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매장수만 6개주 300여개로 늘었을 뿐이다. 그만큼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인앤아웃버거의 전통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햄버거, 치즈버거, 더블더블(패티가 두 겹) 이 세 개로 구성된 단출한 메뉴도 여전히 그대로다.
할아버지는 창업 초기부터 매일 정육점에 직접 가서 고기를 사올 만큼 신선도를 중요시했다. 요즘 경쟁업체들 대부분이 빠른 성공을 위해 대형화와 프랜차이즈화를 택하지만 인앤아웃버거만 철저히 반대의 길을 걷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제조 노하우가 유출되는 것을 막고,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식자재 배송이 가능한 가까운 곳에만 매장을 개설해왔다.
인앤아웃버거의 특징인 단출한 메뉴구성 |
동부지역엔 신선한 재료들을 배달하기 어려워 매장을 내지 않았다. 성장속도는 더디지만 대신 모두 직영매장이어서 품질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 밖에 냉동고기와 전자레인지, 적외선 램프는 쓰지 않는 것이 인앤아웃버거의 철칙이다.
비상장 기업인 인앤아웃버거는 정확한 실적을 공개하지 않지만 2014년 매출 6억2500만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맥도날드 연간 매출의 1% 수준이지만 연평균 매출 증가율은 업계 평균의 2배인 약 10%에 달한다.
LA다저스의 류현진은 체중문제로 미 언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2012년 당시 미국에서 인앤아웃버거를 먹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
▶ 은둔의 경영자=린시는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가족사에 대해서도 입을 굳게 다물어 ‘미스터리한 경영자’로 불린다. 네 차례 결혼했지만 총 몇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과거 두 차례 납치당할 뻔한 위기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평소 스릴 넘치는 레이싱을 즐기고, 한때 아마추어 복서의 길을 걷기도 했다.
인앤아웃버거 매장 점원과 인사하는 린시 스나이더(오른쪽) |
지난달 모처럼 CNBC와의 인터뷰에 응한 린시는 왜 그렇게 신비주의를 고수하냐고 묻자 “개인사를 공개할 필요를 못 느낀다. 사업 외의 이야기를 하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앞으로 회사를 상장하거나 프랜차이즈화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해 계속 가족기업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어 “내 가족들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단단하게 이 길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joz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