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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사에 남을 ‘2016년3월23일’…그들은 국민을 우롱했다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김무성은 뒤늦었고, 이한구는 조롱했다. 새누리당은 마지막까지 비겁했다. 김종인은 화를 냈고, 문재인은 고개를 숙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곪은 상처를 또 덮었다. 안철수와 천정배가 힘을 겨뤘고, 분노한 패배자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국민의당은 낡고 어지러웠다. 20대 국회를 향한 공천 마지막날인 2016년 3월 23일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최악의 날’ 중 하루였다. 낡은 정치의 온갖 구습과 폐단으로 얼룩졌다. ‘계파’라는 이름의 패거리 정치가 국민들을 우롱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능멸했다.

한국외대 이정희 교수(정치외교학)는 24일 “국민들에게 실망만 준 공천이었다”며 “공천과 함께 각 당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우리 정당 정치의 맹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민들은 이번 공천과정을 보면서 한심하다, 이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길 수 있겠느냐, 투표장에 차라리 안 나가겠다고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며 “불신을 넘어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줄 정도로 심각하다, 국민들에겐 바꾸겠다는 생각보다는 좌절이 앞서는 악순환을 가속화한 공천”이라고 호된 평가를 했다. 



새누리당은 후보등록 개시를 앞둔 전날인 23일까지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를 두고 ‘폭탄돌리기’를 했다. 여당의 공천 전체가 한 사람 때문에 뒤흔들린 기괴한 상황이었다. 유승민 의원은 결국 이날 자정을 한 시간여 앞두고 대구에서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유승민 의원은 공천과정 뿐 아니라 새누리당의 총선 판도 전체를 좌우하는 변수가 됐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왜그 더 도그’(wag the dog)이다.

새누리당의 최고 권력자들은 이날까지도 조롱과 비아냥, 비겁함으로 일관했다. 전횡에 가까운 이한구 위원장과 친박계의 공천을 사실상 방임했던 김 대표는 마지막날에 와서야 기자 회견을 갖고 “오늘도 그랬고, 이전 비공개 최고위 때도 경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했었고, 유승민 의원을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했었다”며 “공관위에서 합당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 하는게 옳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한구 위원장과 공관위원들은 거의 ‘코웃음’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김 대표의 기자회견 후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한구 위원장은 “(기자회견) 못 봤는데, 뭐?”라고 반문하는가 하면 “김 대표가 결정할 모양이지? 당 대표가 그런 결정을 하나?” “그런 거(김 대표의문제제기)에 대해 일일이 코멘트 해야 되나?” 등 비아냥으로 일관했다. 이정희 교수는 “친ㆍ비박 갈등 크지만 그것보다도 대통령이 여당의 공천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이한구 위원장이 대리인으로 역할한 것이 불행”이라며 “집권여당으로서 제 할 일을 못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와 이른바 친노 세력간의 대립으로 결국은 개운치 않은 공천 결과를 낳았다. 중도 보수로의 외연 확장을 위한 ‘북궤멸론’ 발언이라든가, 친노 핵심 인사들의 공천 배제 등 김종인 대표의 거침없는 행보에 일단 입을 다물고 있던 더민주 주류는 지역구 공천이 끝나자 결국 반발을 표면화했다. 비례2번 셀프공천 논란을 비롯한 공천명단을 둔 이견이었지만 외부 영입인사인 김 대표에 대한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종인 대표는 즉각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며 사퇴 의사까지 밝혔다. 결국 23일 당 잔류와 대선까지의 당쇄신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 사태가 종결됐지만, 당 주류인 친노 그룹과의 갈등은 ‘봉합’ 수준에 그쳤다.

국민의당에선 비례대표를 두고 두 공동대표인 안철수ㆍ천정배 의원간의 측근 공천 힘겨루기가 계속된 가운데, 23일 경선에서 패배한 김승남 의원이 국회에 와서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당직자간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사태가 있었다.

사상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지탄을 받았던 19대 국회는 이로써 20대 국회에 계파논리만 강화된 공천 결과와 늑장 선거구 획정으로 인한 유권자들이 후보도 모르고 공약도 모르고 투표장에 가야 하는 ‘깜깜이 선거’만 남겨주게 됐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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