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풀지 못한 한을 가슴에 안고’…위안부 피해 할머니 두 분 같은 날 별세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두 분이 같은 날 별세했다. 이로써 총 238명의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생존자는 42명으로 줄었다.

18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 따르면 지난 17일 전남 해남에 거주하던 공점엽(96) 할머니와 중국 헤이룽장성에 거주하던 이수단(95) 할머니가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공점엽 할머니는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1년반께 병원 생활을 하던 중 지난 3월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17일 오후 5시 10분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전남 해남에서 향년 96세로 생을 달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공점엽 할머니. [사진=정대협]

지난 1920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한 공 할머니는 16세가 되던 1935년 “직업을 소개해 준다”는 말에 속아 끌려갔고, 해성, 상해, 하얼빈 등에서 24세가 되던 1943년 무렵까지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전남 해남으로 귀국한 공 할머니는 1947년 결혼했지만 8년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아왔다.

지난 2002년부터 정대협 등 위안부 피해자 모임에 참여해왔다.

이수단 할머니는 공 할머니와 같은 날 오후 3시(현지 시각)께 헤이룽장성 둥닝현의 한 양로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달리했다.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향년 95세로 생을 달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수단 할머니. [사진=정대협]

1921년 평남 출생인 이 할머니는 “만주에 있는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따라나섰다 중국 흑룡강성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혹사당했다.

그 곳에서 이 할머니는 아성위안소 등에서 끔찍한 생활을 했고, 한국 정부의 무관심끝에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본인의 이름 이외에 한국어를 모두 잊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협은 “할머니들이 가시는 그 길에는 딸이라 받은 차별도 없는 세상, 성폭력 피해도, 전쟁의 공포도 없는 그런 세상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며 “이제 모든 것을 잊고 편안히 잠드시길 바라며, 남은 유가족들에게도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