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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영남권 신공항 부지선정, 해법은 있다
영남권 신공항의 입지선정을 두고 경쟁지역 간 힘 싸움이 치열하다. 입지발표가 임박하면서 부산(가덕도)과 대구·경북(밀양)간에 사활을 건 유치전이 전개되고 있다. 20대 국회가 개원도 하기 전에 두 지역 국회의원들이 몰려다니며 자신들의 지역이 선정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정당마저 초월한 상태다. 밀양을 지지하는 TK에선 은근히 박근혜 대통령을 믿는 눈치다. 대구의 김부겸 의원도 거들고 나섰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신공항은 밀양에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수록 부산지역의 결연한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부산의 야당 출신 국회의원들은 부산역에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농성에 들어갈 태세다. 지난 총선에서 가덕도 유치를 공약으로 내놓은 더민주의 부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권에선 영남권 신공항이 어디로 결정되든지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영남권이 분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사실 이런 문제 때문에 지난 정부에서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했던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수익성이 없다고 했지만, 그 이면엔 정치적 부담이 깔렸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얼핏 보면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된 두 지역 정치인과 주민들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갈등과 분열의 원인제공자는 정부다. 제대로 결정 내리지 못하고 정치권에 휘둘리며 차일피일 시간을 지체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정치 쟁점으로 비화됐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해를 넘어 두 지역의 자존심이 걸린 사활적 문제가 돼버린 셈이다.

지금 정부의 태도 또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입지선정을 프랑스 컨설팅회사에 맡겨 일체 정치적 고려 없이 경제성만 갖고 결정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명색이 주권국가에서 이런 것 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외국의 사기업에 맡기겠다는 발생 자체가 한심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국제공항의 입지조차 결정할 수 없는 나라라는 걸 만천하에 선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더 큰 문제는 설령 외국 컨설팅회사가 결정한다고 해도 선택받지 못한 지역주민들은 그런 결정을 공정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데에 있다. 경제성 평가 자체가 미래예측과 같은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적 공정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국책사업에 있어 경제성 예측이 틀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입지가 결정되든지 선택받지 못한 지역의 거센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밀양과 부산 가덕도가 제각각 타당성이 있다면, 두 지역 중 어느 곳을 선택하든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을 점수 몇 점으로 판정하는 건 그리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모두 합의하는 방법으로 두 지역 가운데 어느 한 곳만 정하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측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제비뽑기(lottery)’다. 상이한 가치가 대등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도 자의적이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정의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운(運)에 맡기는 것이 경쟁에 참여한 이들이 동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일 것이다.

다소 엉뚱할 수 있지만 ‘뽑기’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가장 일반적 선택법이었다. 모든 공직자는 자격을 갖춘 시민 가운데 추첨으로 뽑았다. 중ㆍ고등학교 배정에 군소리가 없는 것도 뽑기의 매력이다. 이렇게 결정할 경우 무엇보다 정부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운에 의해 결정된 일을 두고 가타부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돌팔매를 피할 생각을 버리고 양측 주민이 동의할 결정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양측 어느 곳도 양보할 수 없다면, 그리고 한 곳만 선택해야 한다면 뽑기만큼 좋은 방법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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