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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과 ‘헬조선’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광복절 기념사에서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는 결코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른바 ‘헬조선’이라는 유행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언급을 보면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 아직도 우리 젊은이들의 팍팍한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오포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졸업하자마자 신용불량자가 될 상황에 처해있고, 또 자신이 노력해도 취직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서, 이른바 ‘헬조선’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두고 단순히 자기비하라고 치부하는 건 우리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 젊은이에게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에 대해 자긍심을 갖으라고 말하는 것 역시, 집권층이 현재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의 젊은이들도 우리의 현대사를 위대하게 생각하고 우리나라를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겠지만, 이런 자긍심이 이들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에 헬조선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이런 언급을 하기 이전에, 최소한 이들에게 어떤 희망을 가지게끔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미래를 만들어 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들을 이해하며 그 고통을 나누려는 노력이 선행됐어야 했다는 말이다.

물론 정부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경제적 상황이 워낙 안 좋아 그런 노력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 선행됐어야 한다. 그런 현실에 대한 인정 없이 ‘헬조선’이라는 용어 탓만 하고 있다면, 이는 국민이 현재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모르고 있음을 스스로 밝히는 꼴이다.

이런 청와대의 인식은 우병우 수석에 대한 문제에도 나타난다. 국민 여론이나 언론들이 우 수석에 대한 의혹을 그렇게 제기했어도 청와대는 ‘마이웨이’를 가려는 모양이다.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서 ‘헬조선’이라는 용어를 비판한 것이나, 우병우 수석 문제를 그냥 놔두는 것이나 같은 맥락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은 임기 말 증후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임기 말로 갈수록 레임덕에 빠지는 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대통령제를 하는 나라라면 어느 나라나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이런 레임덕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나타나는 시기는 늦출 수 있다. 그 시기를 늦추려면 국민 여론과 국민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한다. 왜 국민이 지금 불만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 못하는지를 살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런데 지금은 거꾸로 국민들이‘ 헬조선’이라는 용어를 쓰는 게 잘못이라는 식으로 나가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레임덕 도래 시기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들이 대거 지도부를 장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게 곧 대통령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그래서 대통령은 항상 국민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추종의 대상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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