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까지 정상외교 강행군을 펼쳤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이번 4강 정상외교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각국의 논리와 국익이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우리나라 정상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4강과 연이어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중심축으로 북한의 도발ㆍ위협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갈등, 남중국해 분쟁 등 동북아정세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각국이 먼저 요청하면서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4강 정상외교는 북한이 올 들어 4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 잇단 도발로 엄중한 상황이 조성된 시점에 정상 차원에서 집중적인 협의를 가졌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다만 청와대가 한미에 대해 ‘아주 좋은 분위기’, 한중에 대해 ‘진지한 분위기’, 한러에 대해 ‘우호적 분위기’, 그리고 한일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라고 각기 다른 표현으로 전할 만큼 각각의 정상회담에서는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특히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의 경우, 양 정상이 한 목소리로 북핵공조 강화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 문제를 연계시킴으로써 회담 성과도 퇴색되고 말았다.
8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지난해 말 합의의 착실한 실시가 중요하다. 한일 양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합의가 널리 지지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본측이 10억엔 송금으로 한일 정부간 합의 이행을 완료했으니 한국도 소녀상 문제를 포함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소녀상에 대한 언급 없이 한일 정부간 합의의 성실한 이행으로 양국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당연히’ 아베 총리가 제기한 소녀상 문제가 포함됐다고 받아들이는 기류여서 한일 간 소녀상을 둘러싼 마찰을 불가피할 전망이다.
남창희 인하대 교수는 “일본은 소녀상 문제가 국가위상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본다”며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국내정치적으로도 자신의 지지층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소녀상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작년 중국 전승절 톈안먼(天安門) 성루 외교로 역대 최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한중관계도 1년 사이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박 대통령이 “한중관계 발전에 도전”, 시 주석이 “어려움과 도전”이라고 하는 등 양 정상이 모두 도전을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양국은 향후 한ㆍ미ㆍ중을 비롯한 여러 채널을 통해 후속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지만 국가전략이 충돌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러 정상회담도 푸틴 대통령이 사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무난하게 넘어갔지만 회담 직전까지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내년 1월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과의 사실상 마지막이 될 한미 정상회담 정도만이 ‘아주 좋은 분위기’였다.
박 대통령의 이번 4강 정상외교는 세계 경제ㆍ군사 10대 강국에 오른 한국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 외교의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신대원 기자 / 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