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후 국내 정치권에선 여야가 공수를 뒤바꾼 형국이 됐다. 그동안 4ㆍ13 총선 참패와 여소야대 국회 구성,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와 조선ㆍ해운업 부실에 따른 정부 책임론 등이 잇따르면서 청와대와 여당은 야권의 공세을 받는 상황이었으나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핵실험 후 사흘만인 12일 여야 3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한 것도 이러한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우 수석 문제에 침묵하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핵무장론 공론화” 주장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대권구도에서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여권 주자들이 유리해졌다는 관측이다. 반 총장은 특히 북 핵실험 직후인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 안보리 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도발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안보리의 강경 조치를 당부했다.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기자회견까지 자청한 것은 이례적이다. ‘0순위급’ 차기 대권주자로 평가받는 반 총장으로선 국내 정치권에서의 파급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전술핵 재배치’를, 남경필 경기 지사는 “모병제”를 들고 나왔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12일 본지 통화에서 “북한 제5차 핵실험이 대선국면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지난 5년 동안 여론조사를 보면 안보 분야에서는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다, 내년 대선에 북핵ㆍ안보 분야가 이슈화되면 보수층 결집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 교수는 “반면 야권ㆍ진보 진영 대권후보들은 안보 이슈에서 ‘우클릭’할 수도 있지만 전통적인 지지층의 비판에 부딪칠 수 있어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보수ㆍ진보 진영 모두 북핵 문제로 인한 외교ㆍ안보 의제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표면적으로는 보수 진영의 대권 주자들이 유리해 보일 수 있다”면서도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핵을 제어하는 데 실패했지만 이명박ㆍ박근혜 대통령의 보수 정부 8~9년간 제재 정책도 성공하지 못했다, 보수ㆍ진보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야권의 입장에 대해서는 “야당이 하나라면 쉽지만, 3당 체제라는 점이 쉽게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산토끼를 잡으려는 외연 확대 전략이 집토끼를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대북정책에 있어 전략적 판단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외교ㆍ안보 의제가 대선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이 될지도 불투명하다. 이준한 교수는 “부동산 가격 상승, 대우조선해양ㆍ한진해운 사태의 연쇄적인 악영향, 2018년 이후 세계적인 경제 위기설 등을 고려할 때 안보 이슈를 경제보다 위로 올리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손호철 교수는 “대북 문제에 있어 극단적인 비난ㆍ낙인찍기나 안보 포퓰리즘은 자제해야 한다”며 “대선에서도 북한 도발에 대한 합리적인 진단과 건설적인 대책이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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