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는 초선, 재선의 비중이 높아진 새 국회의 첫 국감이라 증인 수요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한진해운 사태부터 대우조선해양,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갤럭시노트7 리콜 등 최근 이슈와 관련된 기업 임원들은 물론, 단말기유통법과 골목상권 침해 등 해 묵은 논란과 관련된 기업에 대한 증인 출석 요구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여소야대로 이뤄진 새 국회의 첫 국감인데다, 기업에 대한 증인 요구가 많은 야권에서 초선 의원들의 비중도 높아 더 긴장하고 있다”며 국감 전부터 펼쳐지고 있는 강도높은 증인 전쟁의 모습을 전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업인들의 국회 출석 요구의 절차적 투명성, 그리고 효용성이다. 어떤 상임위원회의 어떤 의원이 무엇을 물어보기 위해 기업 임원의 출석을 요구했는지, 정작 당사자는 상당기간 알 수가 없다. 증인 선정 절차가 국회의원간, 또 여야 정당간 물밑 교섭으로 확정되는 까닭이다. 이 관계자는 “의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 상당수는 이미 최고경영진 등 책임자의 답변이 이뤄진 사항이거나, 또 사전준비 과정에서 충분히 추가 답변을 통해 설득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하지만 증인 선정 절차가 깜깜하게 이뤄지다보니, 정작 중요한 답변을 해야하는 기업 당사자가 사전 준비도 어렵고, 실속있는 답을 하기도 힘들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사진 =대한민국 국회 야경 .국회 홈페이지] |
국정감사 진행 방식도 문제다. 특정 이슈 또는 증인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과 답이 오가는 것이 아닌, 의원별로 10분에서 15분씩 돌아가며 질의하다보니 증인 입장에서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속출하곤 한다. 심지어 오전 또는 오후 5~6시간씩 대기하고도 질문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 국정감사가, 자칫 문제 기업의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부실한 고객 관리를 문제로 국회에 출석한 애플코리아, 또 2014년 과다 수리비 문제로 출석한 독일 자동차 3사의 경우가 그 경우다. 의원들의 질타와 질의에 해당 기업 CEO는 “그렇지 않다”는 답으로 넘어갔고, 이후 상황은 나아진 것 하나 없었다. 국회의원들이 해당 기업에게 “소비자와 의원들의 오해”라는 해명의 기회만 제공하고 만 것이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업 임원, 또는 오너의 증인출석 여부와 관련 모종의 거래가 오간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증인 출석 여부를 놓고 기업에 넌지시 흘리고, 향후 이런저런 도움을 바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대관 담당자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나 질의 내용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닌 증인출석 여부 자체를 통보하고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도 종종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수시로 국정 현안을 점검하는 ‘상시 국감’과 대상 기관을 분산하고 정기국회는 예산 심의에 집중하는 ‘분리 국감’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증인 채택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증인 출석을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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