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여야 공히 ‘협치’를 기치로 출발한 20대 국회는 16일까지 4개월 보름여간 오히려 ‘대치전선’이 더 강화되는 흐름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3당 체제’의 실험도, ‘여소야대’의 새로운 상황도 성공적인 국회 운영과 민심의 반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계파갈등으로 인한 당지도부 공백 상태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지난 8월 9일 전당대회를 마지막으로 벗어났고, 뒤이어 더불어민주당도 경선을 통해 추미애 대표를 선출함으로써 ‘정상적인’ 당지도부를 구성했지만, 협치의 여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원구성과 추가경정예산안,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 등 굵직한 현안들은 마감 시한을 몇 차례씩 연기한 끝에 가까스로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나 검찰ㆍ사법 개혁,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의제는 여야간 합의가 한걸음도 진척되지 못했다. 누리과정 문제도 내년 예산안의 ‘뇌관’이다.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여야 협치 가능성은 더욱 줄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가 대북 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및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강대강 전략을 펼치면서 여권에서도 핵무장론ㆍ전술핵재배치론ㆍ선제타격론 등의 목소리등이 비등한 상황이다. 안보를 이슈로 당청간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그럴수록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야권 공조도 더욱 확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3당체제가 기대와 달리 대치 국면으로 치닫게 데는 새누리당이 여소야대 국회 내에선 ‘소수여당’이라는 현실적 한계와, 당정청관계에선‘엄호세력’이 돼야 한다는 역할론 사이의 딜레마가 한 요인으로 꼽힌다.
20대 국회에서 ‘3당 체제’가 기대를 모았던 것은 제 1당인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제 3당인 국민의당이 사안별로 정책적 공조와 조율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19대 국회에서 자주 빚어졌던 여당의 일방 독주와 야당의 무조건 반대 상황이 극복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여당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청와대의 입장에 대해 무조건 거수기 역할이 아니라 견제와 지지의 균형추 기능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당 안팎에선 수평적인 당청관계로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4ㆍ13 총선 참패후 반복된 당의 계파간 분란과 원내대표-당대표 선거 등 중요 계기에서 친박계의 주도권이 강화되면서 당쇄신과 당청관계 개선을 요구했던 비박계의 힘이 꺾였다. 친박 핵심인 이정현 당대표의 취임 후에는 청와대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목소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결국, 우병우 민정 수석의 거취 문제와 청와대 개각ㆍ인사 정책, 사드 배치 논란 등에서 여당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청와대의 입장을 ‘엄호’ 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19대 국회에서와 달리 ‘소수여당’이라는 한계로 야당의 협조 없이는 주요 입법과 정책과제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 청와대 엄호 역할과 야당 협조 필요성 사이의 딜레마다.
수차례 반복된 추가경정예산안의 협상 결렬 및 합의 과정은 새누리당의 딜레마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사드 배치와 우병우 수석 거취 문제, 공수처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논란을 낳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사태와 추경안 처리를 둘러싼 의사일정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추경안 처리가 시급함에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회의를 ‘스톱’시키고 정 의장실로 몰려가 농성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3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주요 의제에 대해 야당의 제안을 거부하고 대북 강경 대응과 청와대 중심의 안보 정책 기조를 전면화하면서 추석 이후 국회는 여야간 대치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응집력을 키운 ‘소수여당’이 민생ㆍ정치현안 공조를 강화한 ‘거대3야’와 사안마다 맞부딪칠 것이라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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