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총리 추천을 논의하자는 데에는 국민의당이 가장 적극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총리 추천 논의 자체를 반대하진 않으면서도 일단 오는 26일 촛불집회까진 논의를 보류하자는 기류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22일 서울 현충원 고(故)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단 26일 대통령 퇴진 집회에 국민의 뜻과 마음이 결집하리라 생각한다. 그전에 정치권이 총리 논쟁을 벌이는 건 국민 퇴진 열기에 오해가 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국회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치력을 발휘해 총리를 선임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의 연속”이라고 총리 논의를 촉구했다.
두 야당이 온도 차를 보이는 건 그만큼 국무총리 문제가 한층 복잡해졌다는 방증이다. 국회 추천 총리와 거리를 뒀던 야권은 탄핵 당론 확정과 동시에 상황이 변했다. 하야나 2선후퇴 등과 달리 탄핵은 최장 6개월이 소요되고, 이 기간에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하야를 주장했던 상황과 달리 탄핵 절차에 돌입하면 사실상 박 대통령 남은 임기의 상당 부분을 국무총리가 대신한다.
청와대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감안, 국회 추천 총리를 거부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어차피 탄핵으로 심판받는다면 굳이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할 이유가 없다는 강행돌파다. 이래저래 야권으로선 복잡한 셈법이 필요해졌다.
우선 가장 간단한 시나리오는 권한대행의 한계를 감안, 황 국무총리 체제를 수용하는 방안이다. 국무총리 추천 논의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야권이 분열하기보다는 권한대행으로서 국무총리의 역할이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 국무총리에 얽매이지 말고 탄핵을 추진하다는 주장이다. 극단적으로, 만약 황 권한대행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면, 황 국무총리 역시 책임을 물으면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어차피 청와대가 국회 추천 총리를 거부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총리 추천 논의로 쟁점을 흐리기보단 이를 미뤄두고 일단 탄핵에 집중하자는 주장도 궤를 같이한다.
김병준 내정자 카드도 거론된다. 이는 앞서 박 대통령이 김 내정자를 발표한 상황과 현 상황이 다르다는 데에 기인한다. 당시는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명시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야권이 거부한 ‘김병준 카드’라면, 지금은 탄핵을 전제로 한 국무총리라는 데에 있다. 국무총리의 의미가 변했으니 야권 역시 ‘김병준 카드’를 달리 판단할 명분이 생겼다는 의미다. 현실적으로도 황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하는 것보단 김 내정자가 낫다는 판단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으로선 한번 거부한 김 내정자를 다시 수용하거나 추천하는 게 부담이다. 김 내정자가 개헌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 자칫 정국을 개헌 국면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노무현 정부 정책실장 등을 거친 김 내정자가 만에 하나 대통령 권한대행 이후 야권과 각을 세우게 되면, 야권으로선 오히려 황 국무총리보다 난감한 상대다.
남은 가능성은 ‘정공법’이다. 청와대가 거부하더라도 일단 국회 추천 총리를 선정하자는 주장이다. 손학규 전 고문,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 고건 전 국무총리,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이 앞서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이다. 만약 청와대가 이를 거부해 결국 황교안ㆍ김병준 총리 카드로 가더라도 일단 국회가 총리 후보를 추천하는 게 명분 상으로도 맞다는 차원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국회의 빠른 합의다. 내년 대선까지 맞물린 만큼 대통령 권한대행을 선출하는 건 각 정당으로선 중차대한 결정이다. 자칫 논의 과정에서 이견이 도출되면 어차피 청와대가 거부할 가능성이 큰 카드를 두고 야권만 분열되는, 얻는 것 없이 잃기만 할 카드가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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