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초반 영국에서는 자동차의 등장으로 피해를 보게 된 마차업자들이 반기를 들고 자동차 통행에 제약을 가하는 ‘악법’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붉은 깃발법’으로 불리는 ‘적기조례’다.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붉은 깃발을 가진 기수가 마차로 55m앞에서 자동차를 선도해야하며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정지해야 하고 말을 놀라게 해서는 안되며, 최고속도는 3km/h로 제한된다는 것이 이 법률의 주요 골자다.
현실적으로 자동차를 운행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마차업자들의 집단이기주의로 인해 탄생된 이 악법으로 인해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원지이자 최초로 자동차를 상용화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 같은 집단 이기주의를 현 산업계에서는 신제품의 확산을 방해하는 ‘사용장벽(usage barrier)’으로 정의한다.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세계가 놀랄만한 신제품(신소재)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익숙한 생활습관이나 관행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사용장벽이 높은 신제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대 산업계에도 이 같은 장벽은 세계 산업 전반에 걸쳐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GDP 대비 R&D 투자율이 4.29%(605억 달러)로 OECD 국가 중 1위 수준이다. 그러나 R&D 개발 기술 19만 건 중 15만4000건이 휴면상태다. 한국에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산업계 전반에 주리를 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달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일환으로 정무경 조달청장이 밝힌 ‘혁신 시제품 구매’는 이 같은 장벽들을 제거하고 제조업을 둘러싼 사람·기술·조달 등 산업 생태계 전반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의 근본인 제조업이 혁신을 통해 이른바 혁신제품을 개발하면 이를 정부가 나서 첫 번째 구매자(First Buyer)로서 선도적으로 수요를 창출하고 스타트업 기업 등 산업 전반에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기업들은 R&D를 통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 놓고도 상용화 단계에서 판로를 개척치 못해 도산하게 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 시제품 구매’는 실험실의 제품을 시장으로 나가게 함으로써 산업계에 전반에 혁신의 물꼬를 터 주는 방식이다.
이 같은 내용의 혁신시제품 시범구매는 기존의 R&D 사업이 장기간에 걸친 투자에도 불구하고 사업화에 실패해 실제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개선키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수단이라 할수 있겠다.
정 청장은 취임 초 역점추진 정책으로 혁신시제품 구매외에도 ‘벤처나라’ 활성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벤처나라’는 초기 창업·벤처기업이 기술혁신제품을 개발해도 납품실적 부족 등으로 조달시장에 바로 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음에 따라 이런 제품을 홍보하고 거래할 수 있는 전용몰 ‘벤처나라’를 구축해서 창업·벤처기업의 판로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로인해 벤처나라 판매실적이 크게 늘고 있고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등 더 큰 시장으로 성장하는 등 조달시장 진입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벤처나라 누적 판매실적은 2017년 54억 원에서 2019년 6월말 309억 원으로 대폭 증가했으며 약 4600여 상품이 등록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정무경 청장은 국내 공공조달 시장은 연간 약 120조원을 웃도는 막대한 규모로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7%에 이르는 공공구매력을 신기술·융복합의 혁신제품에 선도적으로 활용한다면 혁신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지금의 경쟁사회를 혹자는 ‘수축사회’라고 말한다. 인구가 줄고 기술이 앞서는 시대에서 산업 전반에 모든 것이 줄어드는 현상을 일컫는다. ‘수축사회’에서는 승자만이 존재한다. 중간은 없다. 경쟁의 구도에서 더이상 패자가 승자와 공존할 수 있는 시대(팽창사회)가 끝난 것이다. 때문에 약소기업이 생존하기 힘들고 특히 스타트업 기업들은 더더욱 성장키 어려운 시대다.
벤처나라 활성화와 같이 혁신시제품 구매 등 우리정부의 혁신조달정책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 산업계에 얼마나 많은 혁신의 바람을 불러 일으킬지 정 청장의 거침없는 드라이브에 관심과 기대를 걸어본다.
kwonh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