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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조국 후보자, ‘코너링’과 장학금

스물 아홉의 늦은 나이에 군에 사병으로 입대했다. 훈련소 시절, 자라온 배경이 제각각인 20대 남성들은 계급장도 없이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사회에서 잘 배웠건 못 배웠건, 힘이 있었건 없었건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굴렀다. 고된 훈련을 마친 어느날이었다. 조교들은 훈련병들에게 종이를 나눠줬다. ‘친인척 중에 군 관계자가 있거나, 사회 고위공직자가 있으면 적어서 내라’고 했다. 내 옆자리에 있던 한 친구는 현역 대령이라던 삼촌 이름을 한껏 자랑스러워하며 적어 냈다. 혹여 아무 것도 적어내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까 전전긍긍하던 이들도 있었다. 적어간 명단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때 이후로 한 공간을 같이 쓰던 훈련병들은 똑같이 끌려왔더라도 누구는 ‘이등병’이고, 누구는 ‘이등별’이 될 수 있다는 걸 체감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3차례 영장이 청구된 끝에 구속됐다. 세월호 수사를 방해했거나, 가족회사 자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도 받았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은 아들의 의경 복무 특혜 의혹이었다. 우 전 수석의 아들은 정부서울청사 경비대에 배치됐다가 두달 반만에 이례적으로 서울경찰청 운전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꽃보직’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선발에 관여했던 경찰 관계자는 해명 과정에서 “코너링이 굉장히 좋아서”라는 말을 남겼고, 이후 ‘코너링’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희화한 말로 소비됐다. 우 전 수석 아들의 운전실력을 검증할 길은 없지만, 그렇다고 청와대 민정수석이 경찰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아들 운전병으로 바꿔주시오”하고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특혜의 묘미는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데 있다. 아마 우 전 수석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알아서 제공한 ‘호의’ 때문에 왜 고역을 치러야 했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듯 하다.

낙제점수를 받아 유급을 당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이 의학전문대학원을 다니면서 2016~2018년 6학기 동안 12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조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50억 원이 넘는 재산 내역을 신고했다. 현금 보유량만 해도 30억 원이 넘는다. 그의 딸 역시 한 사모펀드에 5000만원을 투자했다. 한학기에 200만원 남짓한 장학금은 그리 큰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조 후보자가 “우리 딸에게 장학금을 주라”고 했을 리도 없다. 과연 그 교수는 학생의 부친이 누구인지 몰랐을까. 장학금이 지급된 2016년에 조 후보자는 의학전문대학원 소재지인 부산 지역 명망가이자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의 최측근이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했다.

딛고 있는 땅의 높이가 다르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훈련병을 상대로 힘있는 사람과의 연결끈을 찾던 군인은 자기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터득한 것이겠고,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에게 꽃보직을 준 경찰이나, 장학금을 지급한 교수 역시 누구의 요구도 받지 않은 채 순전히 호의를 베풀었을 뿐이겠다. 다만 그 호의는 선택적으로 이뤄졌고, 받는 입장에서는 그 맥락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구나, 여겼을 법 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가 얻는 게 있으면 또다른 누군가가 배제되는 게 세상 이치라는 점이다. jyg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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