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소원 청구 각하 결정
피해자 측 "아쉬움 남지만 재협상 단초 될 것"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가 헌법에 어긋나는지 결론을 내린다.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박근혜 정부에서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선언적 의미에 불과한 것으로, 피해자들의 지위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가 적극적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지만, 위안부 문제 재협상 여지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헌법재판소는 27일 강일출(89)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29명과 유족 12명이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고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재판이 시작된 이후 사망한 청구인 15명에 에 대해서는 심판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헌재는 박근혜 정부 위안부 합의는 양국을 구속하는 조약이 아닌 ‘비구속적 합의’라고 봤다.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의 동의 등 헌법이 정한 조약 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조약은 서면의 형식으로 체결되는데, 위안부 합의는 구두로 의견을 교환했고, 용어도 ‘기자회견’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도 근거로 삼았다.
헌재는 또 “합의의 내용상 한·일 양국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의 창설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과 일본 정부의 출연에 관한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강구한다’, ‘하기로 한다’, ‘협력한다’처럼 의무 이행 시기나 방법, 불이행시 책임 등 구체적인 계획 없이 선언적 내용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의 우려를 인지하고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했지만, 무엇이 적절한 해결인지 의미나 방법을 규정하지 않아 양국의 권리 혹은 의무를 구체화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헌재 관계자는 "기본권에 영향을 줘야 헌법소원 대상인데, 한·일 위안부 합의는 정치적·외교적 합의이지 권리 의무를 명확하게 소멸시켰거나 변경시켰다고 볼 수 없다.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해자들은 배상 청구권을 일본에 대해 갖고 있으며 권리 의무에 영향이 없어 헌법 소원 심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다"고 설명했다.
선고 직후 위안부 피해자 측은 "고통 받은 시간이 수년인데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고 했다. 이어 "합의가 조약의 형식을 갖추지 못해 피해자들의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은 긍정적"이라며 "합의 자체의 성격이나 효력을 감안해 과감하게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는 단초가 마련 될 것"이라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측 변호인인 이동준 변호사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재의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는 헌법소원 심판 대상이 아니라는 심판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29명과 유족 12명이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 결정했다. [연합] |
앞서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며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약100억원)을 출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합의 조건으로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시는 문제 삼지 않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드러나며 불공정 합의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이듬해 3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들을 대리해 “정부가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고자 하는 할머니들을 배제한 채 합의해 이들의 재산권과 알 권리, 외교적 보호를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 소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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