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당선·총선 관리 ‘두토끼 잡기’
둘다 성공땐 대선가도, 반대땐 타격 예상
선거판 각종 변수 도사려 예측은 섣불러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서울 용산 농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4·15 총선 공동 상임 선대위원장직과 서울 종로 출마공식 제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 |
“총선도 총선이지만, 대선을 향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죠. 한마디로 독하게 마음 먹고 대선 시동을 걸었다고 봐야죠.”
국무총리 바통을 정세균 의원에게 넘겨준 이낙연 전 총리가 지난 23일 올해 총선에서 종로에서의 출마 뜻을 밝히고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직을 맡겠다고 한 직후 여권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동안 총선 출마와 총선 선대위원장직 사이에서 고민해왔던 이 전 총리는 아예 두가지를 다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스스로 총대를 멘 것은 아니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날 이 전 총리에게 종로 출마 권유와 함께 선대위원장직을 제안했다. 이를 이 전 총리가 하루만에 둘다 받은 것이다. 정치 1번지에서의 출마와 함께 공동이긴 하지만 선대위원장을 맡겠다고 한 것은 그 행간이 간단치 않아보인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일단은 이 전 총리의 승부수인 것은 확실하다. 이 전 총리가 여권내 거물임과 동시에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수개월째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잠룡이긴 하지만, 총선 출마와 함께 선대위원장직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은 마인드 상, 또는 체력적으로도 버거울 수 있다. 이 전 총리로선 본인의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함은 물론이고 민주당 전체의 총선판도에서도 큰 성과를 얻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게된 것이다.
종로 출마는 상징성이 크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는 거물급들의 전쟁터가 돼왔고, 종로 선거에서 이기는 정치인은 막대한 플러스 효과를 챙겨왔다. 실제로 노무현, 이명박 전직 대통령은 종로 선거에서 승리한 뒤 정치적 입지를 더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전 총리가 종로 출마 결심과 관련해 “우리의 역사와 얼이 응축돼 숨쉬는 ‘대한민국 1번지’ 종로에서 정치를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라고 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앞서 정세균 총리가 종로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으며 이 전 총리의 후임으로 지명되기전까지는 종로에서 강력한 수성 의지를 보여온 것도 이같은 상징성을 감안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종로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출마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만약 황 대표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면 이 전 총리로선 더욱 확고한 대권주자 위치를 굳힐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가 종로행을 받아들인 이유로 풀이된다. 더 큰 열매를 얻기위해 모험과 도전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실제로 황교안 대표와의 ‘종로 빅매치’ 가능성에 대해 두렵지 않다는 뜻을 표했다. 그는 “(황 대표가 종로에서 나오는 문제는) 상대 당의 결정이므로 그것에 대해 제가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면서도 “제 개인의 마음을 말하자면, 신사적 경쟁을 펼치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했다. 황 대표가 나오더라도 자신 있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이 전 총리 측이 종로에서의 여러 가능성을 이미 진단했을 것”이라며 “황 대표가 나오더라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쪽으로 계산을 끝낸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공동이지만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것도 이 전 총리의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결단이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무게가 실린다. 만약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자유한국당 등 보수에 밀리면 선대위원장으로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에 처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선대위원장 제안을 수락한 것은 총선에서의 자신감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선대위원장 수락과 관련해 “역사의 또 다른 분수령이 될 4·15 총선의 최고책임을 분담하게 되는 것도 과분한 영광”이라고 했다. ‘최고책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것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과분한 영광’이지만 그걸 안고 승전보를 올리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이 전 총리의 총선 행보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여태까지의 시각은 둘 중 하나였다. 총선에서 스스로 출마하는 것이 하나요, 총선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또다른 하나였다. 즉, 정치권에서는 이 전 총리가 총선 출마 또는 선대위원장 수행 등 둘중의 하나의 선택을 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이같은 예상을 깨고 이 전 총리는 총선 출마와 총선 진두지휘라는 ‘두마리 토끼’를 취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운데), 이인영 원내대표(왼쪽)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3일 서울 용산역에서 귀성객들에게 설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 |
정가에선 이 전 총리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조직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챙기려는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분석한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향후 대선 잠룡으로 거론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제외하고 전현직 총리만을 비교하자면, 정세균 총리는 조직이 있는 반면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거꾸로 이 전 총리는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으나 조직은 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로선 종로에서 당선됨과 동시에 선대위원장으로 총선 성과를 내면 자연스럽게 여권내 자기 조직을 강화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평가다.
이 전 총리의 승부수가 성공할지는 현재로선 거론 그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표심만이 안다는 선거 결과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 1번지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종로에는 이 전 총리 외에도 거물급들의 집합 장소가 될 것이 뻔하고, 삐걱대고는 있지만 보수 진영에서 추진하는 보수대통합 흐름에 따라 총선판 자체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어 곳곳에는 많은 변수가 남아 있다.
확실한 것은 이 전 총리는 종로 지역구에서 생사를 건 표심전쟁을 벌여야 하고, 전국을 돌면서 다른 후보들의 지원유세도 해야 하는 등 한동안 고난의 강행군을 펼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를 이 전 총리가 모를 리 없다. 그가 전국 유세와 지역구 선거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겠느냐는 세간의 시각에 대해 “선거 상황에 따라 최선의 지혜를 내야 할 것이며, 선거 목표에 대해서는 구체적 의견을 나눈 적이 없으나 가능한 최대한의 의석을 얻어야 한다”며 일단은 원론적인 멘트를 내놓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재로선 구체적인 플랜을 짜고 있는 단계로 해석된다.
이 전 총리는 암튼 “출마와 선대위원장,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지만, 영광스러운 책임인데 그 영광과 책임을 기꺼이 떠안겠다”고 했다. 이 ‘영광’과 ‘책임’이라는 단어는 총선 이후 이 전 총리에 어느 하나는 반드시 적용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종로 선거 승리와 민주당 총선의 선전, 이 둘다 성공을 거둘때 이 전 총리는 ‘영광’을 안을 것이고, 둘 중 하나가 삐걱거리면 ‘책임’ 얘기가 뒤따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전 총리는 결국 ‘베팅의 승부수’를 던졌다. 한 곳만의 최종 종착지를 향한 채 말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