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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탐정의 ‘업무 범위 획정’은 ‘법 따로 현장 따로’ 혼란 불보듯 뻔해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탐정의 업무 범위, ‘최소한 해서는 안될 일(절대 금지사항)’ 만을 명시하는 게 옳아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세계적으로 탐정(업)의 업무 범위를 정함에는 ‘법률로 열거한 일’만 할 수 있게 하는 포지티브(Positive, 열거주의)형과 ‘하지 말라고 금지된 것 외에는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개괄주의)형으로 대별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탐정(업)의 직업화 진행 및 법제화 논의와 때를 같이하여 ‘탐정(업)의 업무 범위’를 어떤 모델로 설정함이 옳을지에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관련 필자는 ‘탐정업의 업무 범위를 명료하게 획정(劃定)해 두면 탐정의 일탈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열거주의에 대한 짝사랑)의 나이브(naive)함과 위태성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탐정(업)의 업무는 일반적으로 암암리에 진행되는 특성상 ‘그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즉, 탐정업무의 진행 과정을 추적하거나 밀착 감독하는 일은 홍길동의 행적을 쫓는 일보다 지난(至難)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탐정업에서 ‘탐정들은 획정 되어진 이 일만 하라’는 열거주의(포지티브) 법문이 엄수되리라 보는가? 또한 입법기술상 탐정업의 업무를 수십 수백가지로 세분하여 낱낱이 획정할 수 있겠는가? 또 그들의 업무가 획정된 범주 내에서만 이루어 지고 있는지 확인 할 인력이나 방도는 있는가?

이렇듯 탐정(업)의 업무 대상이나 범위를 획정해 두는 ‘포지티브형(열거주의) 입법’은 그 법률이 공포되는 순간 휴지로 전락되거나 ‘있으나 마나한 법률’이 될 것임이 불보듯 뻔하다는 게 탐정(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러한 ‘탐정업의 특질’을 감안하여 일본·영국·프랑스 등 탐정제를 안착시킨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탐정업의 업무 범위와 관련하여 그 범주를 법률로 압축하거나 열거하는 방식 대신 ‘최소한 해서는 안 될 일(절대적 금지)’을 제시하는 ‘네거티브형(개괄주의) 입법’으로 탐정업을 관리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즉, ‘탐정업무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허용하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개별법으로 처벌(보완)하면 된다’는 취지를 담은 시스템이 바로 ‘네거티브형(개괄주의) 탐정제’라는 얘기다.

영국의 경우 탐정업의 업무 범위를 열거하지 않는 대신 ‘탐정업의 정의’를 통해 탐정업은 ‘특정 인물 또는 그의 활동이나 소재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재산이 소멸된 상황 혹은 그 원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행해지는 모든 감시·조회 또는 조사’를 그 업무로 함을 개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국가직업인증제), 프랑스의 경우에도 ‘제3자의 이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당해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사적 조사활동’을 탐정의 업무로 규정(Loi No.83-629 de 12 juilet 1983 Article 20)하고 있을 뿐 탐정의 업무를 세세하게 제시하지 않는 개괄주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입법 추세는 ‘탐정업 업무가 광범하게 허용된다는 개괄주의의 취약점을 악용하는 불법이 자행되더라도 개별법으로 얼마든지 장악이 가능하다’는 입법정책상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대개의 주가 외형상 탐정업무의 범위를 명문화하는 열거주의를 취하고 있으나 그 허용 범위가 만능에 가까우리 만큼 광범하여 사실상 개괄주의 업무 범위와 다를 바 없다는 게 미국에서 탐정업에 종사하고 있는 교민들의 전언이다. 이에 연유해 미국 탐정의 업무 범위를 일컬어 ‘열거주의를 통한 개괄주의의 실현’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세계적 탐정 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우에도 ‘탐정업 업무의 범위’를 열거하지 않고 ‘탐정업 업무의 적정화에 관한 법률 제6조(탐정업무 실시의 원칙)’를 통해 ‘탐정업은 타인의 사생활 등 권익을 침해하거나 개별법을 위반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을 업무의 기준이자 업무의 범위로 제시하고 있다. 즉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지 아니하거나 개별법에 저촉되지 않는 일은 일단 탐정업의 업무 대상이 된다는 애기다. 이러한 개괄적인 업무 범위 제시는 일견 허술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 너무나도 명료한 업무 범위의 제시라 하겠다. ‘불법행위 하지 말고 탐정업 하라’는 애기다. 얼핏 느슨한 규정 같지만 ‘불법하면 모두 처벌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개별법의 엄중함을 느끼게 하는 법제(法制)이다.

우리나라 역시 네거티브형 탐정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2017년 7월 국회 미래일자리특별위원회가 제출한 ‘공인탐정 및 공인탐정업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20대국회 종료로 폐기). 이 법안은 ‘탐정업무의 기본 원칙(제3조)’을 통해 ‘탐정업무는 다른 사람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 대승적 규정을 두는 대신 탐정업 업무의 범위를 획정하지 않은 개괄주의(네거티브)형 법률안으로 17대 국회이래 발의되었던 11건의 탐정업 관련 법안 중 ‘탐정업의 업무 범위’ 설정(표현)에 관한한 가장 합리적인 법안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형 탐정업(민간조사업)의 업무 범위를 정함에는 향후 ‘탐정업 업무 관리법’이 제정되건 ‘공인탐정법(민간조사업법)’이 제정되건 개괄주의(네거티브형) 모델을 취함이 옳아 보임을 거듭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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