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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정책도 박자가 맞아야 한다

같은 노래도 박자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로 들리기도 한다. 성공적이거나 좋은 정책도 잘 부르는 노래처럼 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조직 내외의 박자가 맞아야 하고, 일을 하는 순서라는 박자도 맞아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타이밍이라는 중요한 박자도 맞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지하철 1회용 종이승차권의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무인발매기가 많이 보급됐지만 역마다 매표창구를 운영함으로써 인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65세 이상 어르신의 1회용 무임승차권은 역사 창구 앞에 쌓아놓고 당사자들이 가져가게 함으로써 부당 사용 등의 문제가 심심찮게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종이승차권은 마그네틱으로 돼 있어 RFID 방식인 신형 교통카드형 단말기엔 사용할 수 없어 개찰구에 2개의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이 상당히 많았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수도권 전철은 개찰구의 내구연한이 도래해 신형으로 교체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이렇게 1회용 종이승차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이라는 박자는 갖춰진 시점이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그리고 언제 추진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코레일과 이 문제를 풀고자 여러 차례 협의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당장 기존 시스템을 대체할 만한 수단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중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했다. 반면 서울시는 설치비와 유지관리비가 이중으로 들어가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종이승차권 유지에 따른 인력 과다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RFID 방식의 1회용 교통카드를 만들자는 입장을 폈다.

양 기관 간 입장 차이를 보이자 감사원에서 조정하겠다고 나섰다. 감사원은 양 기관의 의견을 들어 합의문을 만들고 이 합의문에 서명하는 행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종이승차권 폐지로 역사 내 근무인력의 축소를 우려한 지하철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준비와 설득이라는 박자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합의안이 무산되자 다시 코레일은 원래의 입장을 견지했다. 반면 서울시는 종이승차권은 더는 사용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1회권용 교통카드와 이를 판매하는 장비를 만들도록 업계에 요청했다. 나아가 어르신용 종이승차권도 어르신 무임교통카드를 만들어 대체하기로 했다. 그러나 예산이 전혀 확보돼 있지 않아 결국 외부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았다. 한 은행이 자부담으로 어르신용 교통카드를 만들겠다는 제안을 했다. 서울시는 이를 수용해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교통카드 발급을 해주기로 합의했다. 이후 지하철노조의 동의도 얻어냈다. 이렇게 진행되자 코레일도 결국 동참하면서 외부와의 박자도 맞춰지게 됐다. 서울시 조직 내의 박자는 의외로 쉽게 이뤄졌다. IT세계로 진행되는 시대적 상황을 이해했던 당시 시장을 포함한 고위직들은 큰 틀에서 방향성에 동의하고 세부적인 일은 전적으로 담당부서에 위임함으로써 내부 상하 간의 박자를 쉽게 맞출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종이승차권 폐지라는 조그마한 정책도 여러 가지 박자가 맞아야 성공할 수 있는데 하물며 국가 정책은 더 많은 박자가 맞아야 국민 모두에게 행복을 주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고홍석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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