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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행복한 바자

정치인들은 본인의 부고가 아니면 어떻게든 언론에 나오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만큼 언론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언론도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중의 주목을 받을 만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경쟁에 나서고 있다.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 영향력 있는 매체의 기사 제목만 보고 클릭했다가 ‘낚였다’라는 탄식을 내뱉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05년에 모 방송국에서 준비 중인 드라마의 등장인물 직업이 변호사라는 보도가 있었다. 당시 변호사회에서는 변호사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방송 중지 가처분을 제기하라는 회원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다. 주인공이나 악역도 아니고 그냥 등장인물 중 하나일 뿐인데 소동이 난 거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변호사가 수없이 등장하고, 시사부터 예능까지 출연진 중에 변호사가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자기 PR의 시대’라는 말처럼 적극적인 홍보가 중요해진 시대다. 대형 로펌이 사고를 치면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만 공익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선행은 보도자료를 뿌려도 실리지 않는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수익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국내의 대형 로펌들은 실제로는 많은 기부와 다양한 공익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로펌도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사단법인 온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주에는 온율과 공동 주최하는 ‘온라인 자선바자’와 관련된 공지가 연일 사내게시판에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방식으로 진행이 어려워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것이다.

바자에 기증하고자 하는 물품의 사진과 함께 희망가격을 제출하면 판매 수익 전액을 공익사업에 사용한다고 한다. 변호사가 400여명, 직원까지 포함하면 1000명 정도가 참여하니 그 규모가 제법 클 것으로 기대된다. 어떤 물품을 기증할 것인지 고민하는 데 동료 변호사가 조언을 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3년 동안 만지지 않은 물건은 본인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란다.

위 조언에 따라 지난 주말 집과 사무실에서 그동안 유목민 이삿짐처럼 싸가지고 다니던 각종 물품을 정리했다. 그동안 쓰지도 않으면서 욕심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유용할 물품들이 얼마나 많이 방치돼 있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됐다. 앞으로는 집에서 나올 때보다 더 많은 물건을 손에 들고 귀가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원로 법조인이신 한승헌 변호사님의 수필집 ‘산민객담’에는 기부를 뜻하는 영어 ‘도네이션(donation)’의 어원이 한국어라는 주장이 나온다. 영어 ‘donation’은 한국어의 ‘돈 내쇼’에서 ‘돈네이숑’으로, 다시 ‘도네이션’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고건 전 총리의 수정 의견도 소개하고 있는데, ‘도네이션’은 영국식 발음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식으로는 ‘더 내쇼’에서 ‘더네이션’으로 발전했다는 얘기다.

이번 자선바자에는 혹시 나중에 사용할 것을 생각하고 쟁여놓았던 물품도 과감하게 기증하기로 했다. 기부라는 것이 ‘더내쇼’라는 한국어에서 나온 것이라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내놓아야지 진정한 기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좋은 자리에서 마시려고 보관하던 술 몇 병도 내놓아야겠다. 술 한 잔 대신 기부문화에 취하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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