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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혁신형 기업 창업가 꼭 ‘총수’ 틀에 가둬야 하나

4년 전 불거졌던 ‘혁신형 창업가 대기업 총수 딱지 붙이기’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준(準)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총수로 지정되면 자신과 친족이 소유하는 기업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 등 60건의 감시 체계에 놓인다. 당시 네이버는 “이해진 창업자의 지분율이 4%로 낮고, 이사회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 개인을 총수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해진도 직접 나서 “재벌 총수의 부정적 이미지가 해외 사업에 걸림돌이 된다”고 하소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쿠팡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발목에 기업 총수 족쇄가 채워질 판이다. 공정위는 오는 30일 쿠팡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쿠팡의 지난해 자산이 50억6733만달러(약 5조7000억원)로 공시 대상 기업집단 기준인 5조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논란거리는 김 의장을 그룹 총수 격인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게 타당한지다. 공정위는 애초 김 의장의 국적이 미국이라는 점을 고려해 쿠팡을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려 했다. 하지만 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김 의장이 외국인이지만 국내에서 사업하는 만큼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같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정위가 고심하는 모양새다.

시민단체는 형평성을 얘기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이다.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면 한·미 정부가 상대국의 투자자를 제3국의 투자자와 차별하지 않기로 한 ‘최혜국 대우’ 규정에 어긋날 소지가 크다. 아람코 대주주인 사우디 왕실을 한국 에쓰-오일의 총수로 지정하지 않았듯, 쿠팡에 똑같이 대우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한 쿠팡이 우리 공정거래법보다 강한 규제를 받는 점을 참작하면 이중 규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혁신형 창업가를 기업 총수 틀에 가둬 운신의 폭을 좁히는 규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총수 지정제도는 30여년 전인 1987년 재벌의 불법적 부의 세습과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지금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이 재계에 유행할 정도로 변모했다. 특히 최근 대기업 반열에 오른 혁신형 IT기업들은 순환·상호출자가 없고, 혼맥으로 얽힌 친족경영도 거의 없다. 국내외 인재를 영입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곳도 많다. ‘쿠팡 논란’은 그래서 한국식 총수 경영의 폐단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구(舊)제도가 신산업에 적합한지 묻고 있다. 신산업까지 30년 묵은 족쇄를 채우는 나라에서 혁신기업은 꽃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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