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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국민의 경찰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경찰’.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취임하면서 내건 ‘슬로건’이었다. 12년 전 기자가 경찰청 본청 취재를 담당할 당시 본청부터 일선 경찰서까지 각 경찰 관서 현판에는 이런 구호 같은 슬로건이 붙어 있었다. 신임 청장의 일종의 업무 목표였다. 강희락 전 청장에게 경찰 수장(首長) 자리를 이어받은 조현오 전 청장 이후 현재 본청, 시·도청, 일선 서(署)의 현판에서는 슬로건이 없어졌다. 하지만 지금도 경찰 관서 내부에서는 ‘우리의 목표’나 ‘우리의 다짐’이라는 이름으로, 액자에 담긴 경찰청장의 지휘 지침을 찾아볼 수 있다. 일종의 ‘비공식 슬로건’인 셈이다.

역대 치안 수장의 슬로건에서 보이는 두 개의 키워드는 ‘국민’과 ‘경찰’이었다. 비공식 슬로건에서도 그랬다. 강신명 전 청장과 이철성 전 청장 때 슬로건도 각각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는 희망의 새 경찰’과 ‘국민과 함께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경찰’이었다. 2001년 취임과 함께 수장들 중 가장 먼저 자신의 슬로건을 경찰 관서들 현판에 올린 이팔호 전 청장도 ‘기본에 충실한 국민의 경찰’을 모토로 삼았다. 그러나 과연 경찰이 슬로건대로 국민만 바라보며 섬기고 있는지 최근 들어 의심이 잇따른다. 혹 우러러보는 다른 ‘높은 대상’이 있는지 의구심도 생긴다.

실제 경찰이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한 지 이달 3일로 100일이 됐지만, 아직 수사 결과는 감감무소식이다. 이달 5일 한 매체가 ‘이 차관에게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적용해 이달 안에 검찰에 송치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하자, 경찰은 즉각 이를 부인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경찰청의 관계자는 그날 또 다른 매체와 통화에서 “법리를 검토하는 단계로, 구체적인 처리 방향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이 차관은 법무부에서 요직(법무실장)을 역임하며 현 정권 실세로 평가받아 왔다. ‘눈치 보기’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같은 의혹은 지난해 말 발표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에서도 엿보인다. 경찰은 당시 해당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하지만 이후 검찰, 법원,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같은 수사 결과를 사실상 뒤집어 버려, 경찰은 체면을 구긴 꼴이 됐다.

이때 초래된 불신은 이미 국민에게 깊게 파고들었다. 지난달 말 숨진 채 발견된 중앙대 의대 학생 손정민(22) 씨 사건에서 특히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달 5일 시민에게 ‘아이폰’을 인계받았다는 한 민간구조팀의 팀장은 “(해당 아이폰을)민간에서 먼저 포렌식을 한 후 경찰에 넘기겠다”고 했다. 이달 4일 한 민간구조사가 찾아 경찰에 넘긴 또 다른 아이폰에 대해 경찰이 해당 구조사에게 돌려받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고 전해진 이후다. 아이폰은 손씨가 실종될 당시 함께 술을 마신 친구 A씨의 휴대전화 기종으로, 현재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 ‘손씨 실종 때 순찰차 6대가 한강공원에 왔다’, ‘A씨 친척이 서울의 경찰서장 출신이다’ 등의 루머도 돌았다. ‘섬기겠다’며 다가섰더니 왜 국민이 잇달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지, 스스로 ‘국민의 경찰’이라는 슬로건에는 충실해 왔는지 경찰은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한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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