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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민번호를 빼앗긴 아이…친모 존재 확인만으로 ‘희망’을 품다[유령아이 리포트〈中〉]
동거하던 미성년자 커플이 낳은 주원이
친모는 사라지고 아빠에게 맡겨졌지만
‘친자 확인 소송’ 후 출생신고 무효…

기록 사라져 공적 지원 중단 위기
아보전 도움으로 친모 찾아 출생신고
엄마가 어딘가 있단 사실에…밝아진 아이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이상해요. 분명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아이인데 폐쇄가 됐다고 나오네요.”

임모 씨(61)는 작년 7월 주민센터에서 자신의 보육원(부산 강서구)에서 키우는 주원(9세·가명)이의 가족관계등록부(호적)이 폐쇄됐단 이야길 처음 들었다. 그것도 이미 몇 년 전 일이라 했다. 그간 아이는 가족관계가 없는 무적(無籍) 상태였던 것이다.

▶어느 날 끊겨버린 아빠와의 고리=동거하던 미성년자 커플이 주원이를 낳았다. 친모 A씨와 남자친구 B씨는 출생신고서의 부모 란에 서로의 이름을 적었다.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친모가 동의하면 친부로 등록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머지않아 소원해졌다. 홀로 여관을 전전하며 살던 A씨는 군에서 제대한 B씨에게 주원이를 맡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B씨는 양육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아이를 일시보호소로 보냈다. 이후 주원이는 임 원장이 있는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B씨는 주원이가 자신을 닮지 않은 걸 이상히 여겼다. 결국 법원에 친자가 아님을 확인해 달라는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유전자 검사를 했고 두 사람이 한핏줄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법원은 부자의 친자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확정했다. 주원이의 존재는 B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지워졌다. 출생신고 자체가 무효가 된 것이다.

▶사라진 기록…위태로운 유령 아동=공적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유령아이’가 됐기에 의료보험, 사회복지 등 다양한 공적 지원체계에서 배제된다. 원장 임씨는 “행정시스템에서 기록이 삭제되자 주원이 앞으로 나오던 각종 보조금 지급이 중단될 위기였다”고 말했다. 이 경우 성본창설을 다시 해야 했다. 임씨는 사회복지사로 40년을 일하면서 숱하게 아이들의 성본창설을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간단치가 않았다. 주원이의 친모 A씨의 존재 때문이었다. 임 원장은 시설장의 권한으로 가정법원에 성본창설 허가청구를 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해 12월 ‘친모가 있으므로 성본 창설을 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친모가 직접 가족관계등록 창설 신청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친모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흔적을 찾기가 힘들었다.

▶겨우 연락 닿은 엄마…다시 출생신고=애를 먹던 와중에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구청에 새로 배치된 박진한 아동보호 전담요원이었다. 그는 가족관계증명서에 적힌 친모의 주소지로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을 보냈다. 2주 후 “(친모가) 거주하고 있지 않다”는 집 주인의 답변을 받았다.

박 요원은 “친모의 거주를 말소하면 주민등록부가 폐쇄되고, 친모의 존재가 사라져 지자체 직권으로 아이의 성본 창설을 할 수 있다”며 1달 내내 집 주인을 설득했다. 그럼에도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주원이의 외삼촌(친모 남동생)과 연락이 닿았다. 외삼촌은 친모와 박 요원을 연결해 줬다. 어렵게 찾은 친모가 건넨 첫 말은 “(자신이) 왜 출생등록을 해야 하느냐”였다. 박 요원은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아이가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설득했다. 결국 친모의 도움을 받아 주원이의 출생신고를 완료했다. 지난 2월 16일이었다.

▶새이름, 엄마가 언제쯤 불러줄까요=새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면서 주원이는 이름을 바꿔야 했다. 친모의 성씨를 따랐고 이름 한 글자도 바꿨다. ‘이주원’에서 ‘박준원(가명)’이 됐다.

출생신고에 도움을 준 어른들은 주원이가 이름을 바꾼 뒤에 “성격이 더 밝아졌다”고 말했다. 바이올린과 수영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고 했다. 특히 자기를 ‘낳아준 엄마’가 어딘가 살고 있단 사실을 처음 알았고 아이에게 큰 자극이 됐다.

출생신고가 완료되고 일주일 후. 친모는 박 요원에게 “감사하다”고 연락했다. “언젠가 날을 잡아 (주원이의) 할아버지와 함께 주원이를 보러가겠다”며 “아마 2월 말이나 3월 초에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요원도 “꼭 와달라”고 화답했다. 주원이는 아직까지 친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기획취재팀=박준규·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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