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기본합의서·유엔 동시 가입 등도 성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진 가운데 북방정책이 재조명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1991년 9월 UN총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연합] |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사망한 가운데 그의 북방정책이 재조명받고 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미소 화해 기류와 공산권 붕괴, 한국의 고도성장이 맞물린 시기에 적극적인 대외정책으로 한국 외교의 지평을 대폭 확대했다는 데 이견을 달기 어렵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출범과 함께 북방정책을 본격화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념과 체제가 다른 이들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 공동의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북방에의 외교적 통로는 또한 통일로 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북방외교’, ‘북방정책’ 식의 용어가 사용되긴 했지만, 대북정책과 통일정책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은 노태우 정부가 처음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북방정책 추진 회의에서 북방정책에 대해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시켜 평화통일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대북괴 및 대공산권 안보외교정책”으로 정의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상당한 결실을 거뒀다.
우선 1988년 서울 올림픽 성공적 개최의 밑바탕이 됐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뜻에서 65개국이 불참하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땐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20여개 공산권 국가가 불참했다.
그런데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사실상 북한을 제외한 전세계 160개국이 참가하며 역대 최다 참가국을 기록했는데 북방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공산권과의 외교관계 수립도 대부분 이 때 이뤄졌다.
1989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 루마니아, 몽골, 소련, 1991년 알바니아, 그리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후에도 1991년 에티오피아, 1992년 앙골라와 베트남과 외교관계 수립이 계속 이어졌다.
북방정책 성과에 힘입어 한국은 외교적 고립과 안보불안이 심화된 북한을 상대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전까지 북한은 분단 고착화를 내세워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소련과 중국의 입장이 바뀌고 한국의 독자 유엔 가입 가능성이 짙어지자 동시 가입을 수용한 측면이 강했다.
당시 국민들도 노태우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정치민주화, 대미·대일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박하게 평가했지만 북방정책에 대해서 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선 북방정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안보불안을 심화시켜 군부 강화와 핵개발 추진의 길로 나가게 했다는 평가도 있다.
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