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 원희룡도 몰랐다… 나경원 “여가부 필요”
‘멸공인증’ 논란 대중외교 고려하면 ‘부적절’ 지적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7일 자신의 SNS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게시글 [윤석열 SNS] |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가 ‘혐오 대선’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청년 남성표를 얻기 위해 제안된 공약들은 ‘여혐 공약’으로 이해되며 젠더 갈등을 증폭시키고, ‘릴레이 멸공(滅共)’ 캠페인은 특정 정치 이념을 사회에서 완전히 ‘멸(滅)‘해야 한다는 철지난 이념 논쟁을 재소환하고 있다. 여당 역시 작지만 확실한 ‘탈모 공약’이 인기를 끌자 ‘골프·수리권 확대’ 등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재정 문제에 대한 토론·논의는 생략된 채다.
장예찬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청년본부장은 10일 오전 CBS 라디오에 출연 “젠더 갈등을 여성가족부가 앞장서 조장 하기 때문에 남성혐오부 아니냐. 각종 여성 시민단체에 무차별적으로 지원되는 사업도 많기 때문에 한번 깔끔하게 ‘박살’을 내놓고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말했다. 장 본부장이 방송 중 사용한 ‘박살’이란 단어를 인용해 진행자가 마이크를 넘기자 상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후보 되신 지 두 달 만에 망언을 쏟아낸 윤석열 후보를 싹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한다고 받았다.
윤 후보는 지난 7일 오후 자신의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을 내놓았다. 당초 윤 후보는 여가부에 대해 ‘양성평등부’로 부처명을 개편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돌연 여가부 폐지를 들고 나온 것이다. 여기에 장 본부장이 ‘여가부 박살’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여가부를 향한 ‘혐오’의 감정을 드러냈고 야당 후보의 공약이 됐다. 실제로 여가부 폐지 공약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주축으로 한 청년본부가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선대위 패싱’ 논란도 낳았다. 원희룡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이날 오전 TBS 라디오에 출연 “솔직히 그 공약은 우리 정책본부에서 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사회자가 ‘대변인도 몰랐던 것 같다’고 말하자 원 본부장은 “대변인도 몰랐대요?”라고 사회자에 되물었다. 원 본부장은 “발표하는 당시에 몰랐다. 대신 직후에 (윤석열) 후보님과 통화를 했다. 선 조치 후 보고 이런 것”이라 설명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여가부 폐지 외에도 ‘병사 봉급 월 200만원’ 등 남성 표심을 자극할만한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
‘여가부 폐지’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한 나경원 전 의원은 “개인적으로 여성가족부가 존재할 이유가 있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가 너무 젠더 갈등 이슈로 가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포괄하는 방식의 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윤 후보가 아직) 정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꺼내 놓은 단 일곱 글자짜리 공약 '여성가족부 폐지'에 연일 대선판이 뜨거워지고 있다. 사진은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17층 여성가족부 모습. [연합] |
국민의힘 안팎에서 일고 있는 ‘멸공 인증’ 릴레이는 특정 정치 이념을 사회에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혐오원리’가 확산의 동력으로 해석된다. 사안의 시작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 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멸공’ 해시태그를 붙인 글을 올렸고, 이 게시물이 ‘폭력·선동’ 등 이유로 삭제 조치됐다 복구되자 이후 ‘릴레이 캠페인’이 시작됐다. 윤 후보는 지난 8일 신세계 이마트를 찾아 장을 보는 사진과 함께 ‘달걀 파 멸치 콩’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달걀과 파는 ‘달파(문재인 정권을 파한다)’를, 멸치와 콩은 ‘멸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요약하면 정권을 교체해 멸공을 이루자는 문장으로 해석된다.
나 전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SNS에 멸치와 약콩 등 사진을 올리며 ‘멸공 인증’ 릴레이에 가세하면서 “‘공산당이 싫어요’가 논란이 되는 나라는 공산주의 국가밖에 없을 텐데. 멸공! 자유!”라고 썼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멸치볶음과 콩조림을 곁들여 아침식사를 하는 영상과 함께 ‘멸공 챌린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대선판에 난입한 ‘멸공 인증’ 릴레이에 대선 후보가 직접 참전할 경우 당선된 이후 외교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의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이 될 후보가 직접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할 경우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신세계 이마트는 이미 2017년 중국에서 완전히 사업을 철수했다. 특정 재벌 오너의 경우 ‘멸공’을 놀이로 삼을 수 있겠으나, 차기 대통령 후보라면 국정에 미칠 무게감이 다른만큼 자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멸공 인증’ 릴레이가 확산되면서 여권은 물론 야권 내부에서도 문제제기 목소리가 나온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발(發) ‘멸공 인증’ 릴레이에 대해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좌우 막론하고 멸공’을 외칠 때는 아니다. 이쯤에서 멈춰 주시길. 지금이 어느 때인가. 멸공은 1950~60년대 한국전쟁 후 구호일 뿐, 지금은 누가 뭐래도 남북 평화공존의 시대”라 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열린 손실보상 사각지대 소상공인 간담회에서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탈모 공약’을 필두로 한 ‘세부 핀셋’ 공약도 확산 양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측은 탈모 공약 이외에도 임플란트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골프 대중화를 위해 골프장 운영 심사제 도입, 전자제품 수리권 도입도 약속했다. 또 이 후보측은 면접준비 지원금 지급, 학자금 대출 상환 유예제도 확대, 시세조정 과징금 제도 도입, 아동급식 개선, 초등학교 3시 하교 등도 꺼내 놓은 상태다.
국민의힘 측 역시 전기차 충전 요금을 동결하고 지하철 정기권을 버스 환승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는 ‘석열씨의 심쿵약속’ 시리즈도 시작했는데 첫번째 약속은 ‘택시 운전서 보호 칸막이 설치’였고, 네 번째는 온라인 게임의 본인 인증 절차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나 관련 정책 추진에 필요한 재원마련 및 재정부담의 폭과 범위 등에 대한 토론·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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