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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르바초프, 생전 푸틴 ‘러 우크라 침공’ 비판…“즉각적 평화협상 개시 필요” [나우,어스]
“페레스트로이카는 정당한 대의이자 전체주의 국가와의 단절”
“베를린 장벽 해체 저지했으면 3차대전…INF 조약으로 재앙서 벗어나”
[유튜브 'CBS News' 채널 캡처]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격동의 시대 옛 소련을 이끌며 동서 냉전의 벽을 무너뜨린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생전 발언들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티(개방) 정책을 통해 무너져 가는 제국을 회생시키려 애썼던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서방과의 공생·번영을 주창했던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가 이끈 ‘고르바초프 재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 뒤인 지난 2월 26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조속한 적대 종식과 즉각적인 평화 협상 개시 필요성을 확인한다”면서 “이 세상에 인간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생전 자신이 야심 차게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정당성을 줄기차게 역설했다.

그는 지난해 8월 현지 외교 전문지 ‘국제 사안에서 러시아’에 실린 칼럼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서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많은 일을 달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가 정당한 대의였다는 점은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또 “페레스트로이카는 광범위한 인도주의적 프로젝트였다. 그것은 과거와의 단절, 독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국가가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와의 단절이었다”면서 “다른 모든 선택은 우리나라를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 10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된 뒤 외신 기자회견에서도 “나는 이 상을 개인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페레스트로이카라고 부르는 중요한 사명이 전 세계의 운명에 대해 갖는 위대한 가치와 거대한 의미에 대한 인정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곧이어 이듬해 12월 소련 붕괴를 알리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도 “우리 사회는 관료주의적 통제 체제의 손아귀에서 질식해 가고 있었다.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고 군비경쟁의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 긴장은 극에 달했고 나라는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 이처럼 살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했다”고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고르바초프는 미국과의 무한 군비 경쟁에 제동을 걸고, 동서 냉전의 벽을 허문 주역이기도 하다.

그는 1987년 12월 미국을 방문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사거리 500~5500㎞의 단·중거리 탄도·순항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군비 통제 협정인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체결했다.

기념비적 조약 서명 뒤 그는 “모두에게 특히 우리 두 강대국에 이 테이블에 원문이 놓인 조약은 마침내 재앙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길로 들어설 큰 기회를 제공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9년 캐나다 C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선 소련군에 베를린 장벽 해체를 저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은 데 대해 “우리가 그런 명령을 내렸더라면 그것은 재앙으로 이어지고 제3차 세계대전을 초래하는 실수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르바초프는 1999년 67세로 숨진 부인 라이사 여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2013년 미국 패션지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라이사 여사와의 만남에 대해 “어느 날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았고 저녁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걸었다”고 회고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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