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셴코, 러 우크라 점령지 병합 지지 요청에 즉답 피해
벨라루스 동원령 발동 등 추가 군사행동에 대해선 거부 의사
제너럴SVR “루카셴코, 美·EU 등 서방과 물밑접촉에 성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왼쪽) 벨라루스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튜브 'Информационное агентство БелТА' 채널 캡처]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최근 푸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절대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던 공개석상에서의 발언과 달리 비공개 석상에서는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던 과거 발언이 비현실적이라고 면박을 줬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친(親)러시아 노선을 견지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물밑 협상을 하고 있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초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는 푸틴 대통령과 어느 정도 선긋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크렘린궁 내부 사정에 정통한 러시아 독립 매체 제너럴SVR은 27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 텔레그램을 통해 지난 25~26일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루카셴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보도했다.
이번 회담은 푸틴 대통령이 지난 21일 러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동원령을 발령한 이후 열리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의 주요 목표는 루카셴코 대통령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 점령지 4곳(헤르손·자포리자·도네츠크·루한스크)에 대한 러시아 영토 편입 지지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고 제너럴SVR은 전했다.
이 자리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은 “본국으로 돌아가 숙고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자리에서 곧장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너럴SVR은 “더 나아가 루카셴코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벨라루스의 동원령 발동 등 추가적인 군사행동에 대해서는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고 설명했다.
정상들이 양국 관계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선 루카셴코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이 곤란할 수 있는 질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디미르, 얼마나 더 오래 살고자 합니까”란 루카셴코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푸틴 대통령이 놀라며 질문의 이유에 대해 물었고, 루카셴코 대통령은 “핵무기를 만지작하는 것이 허세일 때는 좋겠지만, 만일 허세가 아니라면 자살행위”라 말했다는 것이 제너럴SVR의 설명이다. 제너럴SVR은 푸틴 대통령이 “아직 이 문제(핵무기 사용 문제)에 대해 말하기엔 이르다”며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고 덧붙였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첫 번째) 벨라루스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두 번째)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튜브 'Информационное агентство БелТА' 채널 캡처] |
제너럴SVR이 전달한 푸틴 대통령과 루카셴코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현장 분위기는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 등이 보도한 것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전날 타스는 푸틴 대통령을 만난 루카셴코 대통령이 “러시아는 거대한 국가인 만큼 모욕을 참지 않을 것”이라며 “서방이 합당한 존중을 표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길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푸틴 대통령도 “우리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호응했다고 타스는 전했다.
제너럴SVR 측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루카셴코 대통령이 공식적으론 푸틴 대통령의 행동에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선 부분적으로 불만을 털어놓거나 이견을 보였다는 것이 된다.
제너럴SVR은 루카셴코 대통령이 이 같은 태도를 보인 이유로 벨라루스와 서방 간의 협상이 진전 국면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제너럴SVR은 “루카셴코는 암(癌)이나 핵재앙 등으로 가까운 시일 내 죽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미래에 대해 큰 계획을 갖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과 우정만을 위해 전 세계와 싸울 의도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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