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개전 이후 남부서 우크라軍 최대 성과”
우크라, 美에 상세 타격 목표 리스트 제공…확전 우려 불식 위해
美, 러 핵무기 사용 대응 비상계획 수립 중
러 하원, 병합 조약 만장일치 비준…상원 비준도 확실시
러, 방어 실패 軍사령관 해임…합병 점령지 경계 확정도 못해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에서 탱크를 타고 진격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4개주(州, 헤르손·자포리자·도네츠크·루한스크)에 대한 병합 공식화에도 아랑곳 않고 반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루한스크(러시아명 루간스크)주 관문 도시인 리만을 탈환한 데 이어 남부 헤르손주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현지 주둔 러시아군의 보급로가 완전 차단 직전 상황까지 놓이면서다.
러시아 측마저 최전선 전황이 불리하다는 점을 자인하며 지휘관 교체 카드까지 꺼내들고 있는 가운데, 기세를 탄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장거리 미사일 지원까지 요청하며 영토 탈환전(戰)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모양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AP·타스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매체와 현지 소셜미디어(SNS)에는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주 졸로타 발카, 미하일리우카 등 기존 러시아 점령지를 수복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다수 게재됐다.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州) 미하일리우카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점령 중이던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건물 위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우크린폼 홈페이지 캡처] |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 이고리 코나셴코프도 이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우세한 탱크 부대를 앞세워 졸로타 발카 방면의 방어선을 깊이 파고들었다”고 말했고, 헤르손의 친(親)러시아 행정부 수반인 블라디미르 살도도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드니프로강 서안 마을 두차니를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했다”고 했다.
두차니는 기존 전선에서 약 30㎞ 남쪽에 있는 드니프로강 서안의 마을로, 우크라이나군은 이곳을 수복함으로써 헤르손주 내 드니프로강 서쪽에 주둔한 러시아군의 보급로 완전 차단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드니프로강 서쪽에 주둔한 러시아군은 적게는 수천명에서 최대 2만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로이터는 이번 진격이 개전 이후 남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 올레 즈다노프는 “우리가 전선을 돌파했다는 것은 러시아군이 이미 공격 능력을 잃었고, 오늘이나 내일이면 방어 능력도 잃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州) 졸로타 발카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점령 중이던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건물 위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레딧 캡처] |
미 CNN 방송은 우크라이나가 영토 수복에 필요한 ‘게임 체인저’ 장거리 미사일을 지원받기 위해 미국에 상세한 타격 목표 리스트를 제공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공격 범위를 러시아 본토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정보 공유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이다.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으로부터 탈환한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주(州) 쿠피안스크시(市)에 ‘우크라이나 시민 당신들은 모두 자유’란 문구가 적힌 광고판이 설치되고 있다. [EPA] |
CNN은 “우크라이나의 목표물 가운데는 원거리 러시아 병참선, 방공 무기 및 공군 기지, 크림반도를 포함해 러시아 동·남부 지역의 무기고 등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크름(러시아명 크림)반도 내 러시아 드론 기지도 타격할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장거리 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ATACMS의 사거리는 300㎞ 정도로 기존에 제공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의 약 4배에 이른다.
다만, 미국은 장거리 미사일 지원이 러시아 입장에서 ‘선을 넘었다’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은 임박한 징후가 없지만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에 대응해 비상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CNN은 전했다. 러시아가 직접 핵무기를 사용하기보다는 자포리자 원전을 타격하거나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핵 장치를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핵 과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날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은 우크라이나 내 4개 지역 점령지와 합병 조약을 만장일치로 비준했다. 4일 조약을 검토할 계획인 러시아 상원 역시 비준이 확실시된다.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이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내 4개 지역 점령지와 합병 조약을 만장일치로 비준하고 있다. [타스] |
병합지를 러시아령(領)으로 굳히기 위한 법적 절차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이들 지역에 대한 방어를 두고 내부 혼란상이 그대로 노출되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막지 못한 상황의 책임을 물어 알렉산드르 주라블리요프 서방군 사령관을 해임하고 후임에 로만 베르드니코프 중장을 임명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병합한 4개 주의 영토 경계가 아직 유동적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기존에 설정한 주 경계선까지 병합한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군이 현재 점령 중인 지역만 병합한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합병이 얼마나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의 영토 탈환 시도에 자위적 차원의 ‘핵무기 사용’까지 시사하고 있는 러시아가 ‘레드 라인’을 설정하는 데 부담을 갖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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