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英 재무, 성명 통해 트러스 표 감세안 대부분 ‘유턴’ 공식화
트러스 자진사퇴 거부에도 위기는 고조…사임 공개 요구 의원 5명까지 늘어
리즈 트러스(오른쪽) 영국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대규모 감세안을 빠르게 추진해 금융시장 대혼란을 유발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다만, 차기 총선에서 보수당을 이끌고 총선을 치르겠다며 자진사퇴 요구에 대해선 일축했다. [BBC 방송 화면 캡처]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경제 성장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며 대규모 감세안을 들고 나왔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결국 파운드화(貨) 가치 급락과 영국 국채 금리 급등 등 금융시장 대혼란을 유발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집권 보수당 내외를 가리지 않고 나오는 ‘자진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일축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트러스 총리는 17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너무 멀리, 너무 빠르게 감세안을 추진한 실수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측근이자 감세 추진의 선봉장으로 나섰던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임명 38일 만에 경질하고, 당내 반대파인 제러미 헌트를 신임 재무장관으로 임명한 뒤 감세 정책을 잇따라 철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낮은 세율을 바탕으로 고속으로 성장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란 판단을 하게 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나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정직한 정치인’임을 보여주는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리즈 트러스(오른쪽) 영국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대규모 감세안을 빠르게 추진해 금융시장 대혼란을 유발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다만, 차기 총선에서 보수당을 이끌고 총선을 치르겠다며 자진사퇴 요구에 대해선 일축했다. [BBC 방송 화면 캡처] |
실제로 헌트 장관은 이날 영상으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트러스 총리의 감세안을 대부분 되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 소득세율을 20%에서 19%로 낮추는 시기를 1년 앞당기려던 것을 아예 취소해버리고 경제 여건이 될 때까지 무기한 동결한다고 말했다. 또, 보편적 에너지 요금 지원을 2년에서 6개월로 단축하고 내년 4월부터는 취약계층 위주로만 지원하겠다고도 말했다. 이 밖에도 ▷배당세율 인하 ▷관광객 면세 ▷주세 동결 계획 등도 모두 뒤집었다.
BBC는 “트러스 총리가 내놓은 ‘미니 예산안’ 주요 내용 중 이미 의회를 통과한 주택 취득세율 인하, 국민보험 분담금 비율 인상 취소만 살아남았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트러스 표 경제정책 모두가 좌절된 셈이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 참석해 질문을 듣고 있다. [로이터] |
트러스 총리를 향한 불신으로 크게 흔들렸던 금융시장에선 파운드화와 국채 가격이 오르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까지 한 트러스 총리지만 리더십 위기에 대해서 만큼은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트러스 총리는 “영국을 위해 봉사하라는 사명을 받고 총리로 선출됐고, 그 책무를 다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며 “다음 총선까지 보수당을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2025년 1월 이전까지 또 한 번 총선을 치러야 한다. 다만, 보수당 내부에선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을 근거로 트러스 총리를 간판으로 총선을 치를 경우 야당인 노동당에게 정권을 내주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위기론이 힘을 얻는 추세다.
헌트 장관이 실질적 총리고 트러스 총리가 이름뿐인 총리란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공개적으로 사임을 요구한 보수당 의원은 이날 5명까지 늘었다. 이에 앞서 데일리 메일은 보수당 의원 100명 이상이 이미 불신임 서한을 보낼 준비를 마쳤으며 이번 주 후반 트러스 총리를 내쫓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위해 취임 1년 내 불신임 투표를 할 수 없는 규정을 바꾸려고 한다는 것이다.
리즈 트러스(가운데) 영국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전용 차량을 타고 영국 의회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로이터] |
이런 와중에 트러스 총리는 같은 날 야당이 신청한 긴급 질의에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를 ‘대타’로 내세워 책임을 피한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하기도 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